[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 세계가 주목했던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협상이 또다시 결렬됐다. 지난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막을 내린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즉각 깊은 실망감을 표명하며, 국제사회가 기존의 ‘합의(consensus)’ 방식 협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회의에는 170여 개국이 참여했으며, 다수 국가들은 법적 구속력을 갖춘 강력한 협약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산유국 및 플라스틱 생산 대국이 반대하면서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현재의 UN 협상은 ‘모든 회원국 합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소수의 반대만으로도 최종 문서 채택이 좌초될 수 있다. WWF는 이를 “절차적 한계가 국제사회의 행동을 가로막은 대표적 사례”로 지적했다.
▲태국 해안가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자이나브 사단 WWF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는 “시민과 과학자, 기업이 원했던 것은 실질적인 진전이었으나, 절차적 벽 앞에서 무산됐다”며 “지도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합의 구조를 모색하지 않으면, 다수의 의지가 늘 소수의 반대에 가로막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협약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매년 약 1,1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되고 있으며,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40년에는 연간 유입량이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 생태계는 물론, 미세플라스틱을 통한 인체 건강 위협도 심화되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인체 혈액, 태반, 폐 조직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석유·석유화학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 대국들은 강력한 감축 규제에 소극적이다. 반면, 섬나라와 해안국가들은 플라스틱 오염으로 직격탄을 맞으며, 더 강력한 협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협상 결렬은 이러한 국제적 이해 충돌을 다시금 부각시켰다.
한국WWF 박민혜 사무총장은 이번 결렬을 “아쉬운 역사적 기회 상실”로 평가하면서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은 생산과 소비에서 모두 플라스틱 다소비 국가에 속한다”며 “2030 플라스틱 로드맵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기업의 재활용·대체소재 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 평균보다 높은 재활용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여전히 재활용 가능 플라스틱의 상당 부분이 소각·매립되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술과 정책을 통해 선도적 모델을 구축한다면, 글로벌 협약 부재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번 결렬이 단순한 협상 실패를 넘어, 시간을 잃는 것 자체가 피해를 키우는 결과라고 경고한다. 플라스틱 오염은 매년 누적되며, 대응이 늦어질수록 비용과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는 지금 당장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2040년까지 누적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에 회원국들은 추가 협상회의(INC-5.3)에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WWF는 정부, 지역사회, 기업 및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플라스틱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
[ⓒ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