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유소 1만360곳…노후화가 키우는 '보이지 않는 재난'

부식방식 교육 부재가 누유·토양오염·안전사고 키운다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9-08 10:13:23

[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2026년 5월 말 기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는 1만361개소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1970~1980년대 설치된 시설로, 지하 저장탱크와 배관의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주유소는 국민 생활과 산업을 지탱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기반시설이지만, 시설이 노후될수록 환경과 안전 측면에서는 '잠재적 위험시설'로 변한다. 지하에 매설된 강철 저장탱크와 배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식이 진행되고, 작은 균열 하나가 대규모 토양오염과 지하수 오염, 화재·폭발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연구에서는 강철 저장탱크의 누유 발생률이 설치 후 10년 이내에는 4.9% 수준이지만, 15~20년이 지나면 42.3%까지 급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역시 설치 시기와 관리 여건을 고려하면 이와 유사한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국 주유소 60%는 셀프…그러나 시설 노후화는 계속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주유소는 경기지역이 2187개로 가장 많고, 이어 경북 1124개, 경남 980개, 충남 940개 순이다. 전체 주유소 가운데 셀프주유소는 6275개로 전체의 60.6%를 차지한다.


운영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지하 저장시설 자체는 설치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사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초기 설치된 강철탱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토양 속 수분과 산소, 염분, 미생물 등에 의해 지속적인 부식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부식이 대부분 지하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외관만으로는 확인이 어렵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누유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예방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금속 부식은 '불꽃 없는 화재'
부식은 흔히 녹이 스는 현상 정도로 인식되지만 산업계에서는 '불꽃 없는 화재'로 불린다.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서 사용되는 철강 구조물과 배관, 저장시설은 자연적인 전기화학 반응으로 끊임없이 부식된다. 이러한 부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선진국에서도 국내총생산(GNP)의 2~3%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유소의 지하 저장탱크는 한번 설치하면 수십 년 동안 토양 속에 매설된 상태로 운영된다. 점검과 보수가 쉽지 않은 구조인 만큼 초기 방식(防蝕) 설계와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시설의 수명을 좌우한다.


부식이 진행되면 저장탱크나 배관에서 유류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이 유류는 토양을 거쳐 지하수까지 오염시킨다. 토양은 한번 오염되면 원상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복원비용 또한 막대하다. 

▲ 주유소 지하 저장탱크


토양오염은 되돌리기 가장 어려운 환경피해
토양은 다른 환경매체와 달리 오염이 발생해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오염물질은 토양 속에서 장기간 축적되며,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결국 농작물과 생태계를 통해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석유계 탄화수소는 토양 깊숙이 침투하기 때문에 정화에 수년에서 수십 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과거 주유소 저장탱크 누유로 인한 토양 및 지하수 오염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일부 사례에서는 토양 복원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비용이 투입되기도 했다. 예방관리보다 사후 복원이 훨씬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셈이다.

법은 있지만 관리의 핵심은 빠져 있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은 지하유류저장탱크에 대해 누출방지시설과 누출감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시설 설치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하는 부식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주유소는 소방당국이 위험물시설로 관리하고, 토양오염은 환경당국이 담당하는 구조여서 관리체계도 이원화돼 있다. 시설 안전과 환경관리 정보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시설을 실제 운영하는 사업주와 관리자, 위험물안전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부식방식 교육은 사실상 제도권 안에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은 '방식기술'부터 가르친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기술 선진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부식방식기술을 독립된 산업기술로 육성해 왔다. 산업시설 운영자는 부식 원인과 방식기술, 전기방식(Cathodic Protection), 코팅 유지관리 등을 지속적으로 교육받으며 전문인력도 별도로 양성하고 있다.


그 결과 부식으로 인한 국가 경제 손실도 GNP의 약 2%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방식기술이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경제적 손실이 GNP의 5% 수준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식방식 교육 의무화' 필요
전문가들은 노후 주유소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시설 교체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투자'를 꼽는다. 주유소 관리자와 위험물안전관리자,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부식방식 교육을 의무화하고, 저장탱크와 배관의 전기방식 관리, 방식전위 측정, 방식설비 유지관리, 누유 예방기술 등을 정기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음극보호 방식(Cathodic Protection)과 도장·피복 유지관리 기술은 저장시설의 수명을 크게 연장하고 누유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대표적인 예방기술로 평가된다.
부식은 사고가 발생한 뒤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기 전에 차단하는 관리기술이기 때문이다.

국내 주유소는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인프라이지만, 동시에 전국 곳곳에 분포한 대표적인 특정 토양오염 유발시설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탄소배출 저감뿐 아니라 기존 산업시설의 환경안전 관리도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노후 주유소 관리체계는 단순한 시설점검에서 벗어나 부식관리 중심의 예방관리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시설을 새로 짓는 것보다 오래된 시설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더욱 중요한 시대다. 이제는 누유 사고가 발생한 뒤 토양을 복원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기보다, 부식방식 교육과 예방관리 체계를 강화해 사고 자체를 줄이는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진행되는 작은 부식이 대형 환경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후 주유소 관리의 패러다임을 '사후 복원'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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