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처리 넘어 산업계 순환경제 전환 본격화되나

규제특례 12건 이어 선도기업·산업단지 16곳 첫 지정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8-17 11:05:10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정부의 순환경제 정책이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넘어 전기·전자, 반도체 소재, 철강, 식품 등 주요 산업의 원료 공급망을 재편하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입 원료를 국내 폐자원에서 생산한 재생원료로 대체하는 산업전략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폐플라스틱·냉매·하프늄·철강 부산물·식품 포장재까지 순환이용 확대

▲제공=기후부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6월 19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올해 처음 지정한 순환경제 선도기업·산업단지 16곳 및 한국환경공단과 ‘순환경제 선도기업·산업단지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정부는 4월 30일 순환경제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폐합성수지 열분해 재활용, 생활화학제품 표시방식 개선 등 12개 과제에 순환경제 규제특례를 부여했다.

 

두 정책은 각각 역할이 다르다. 규제특례가 기존 법령에 막힌 기술의 실증을 허용하는 제도라면, 선도기업·산업단지 사업은 원료 생산기업과 수요기업, 운송·처리기업, 지역 산업단지를 하나의 순환경제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규제를 풀어 기술을 시험하는 데서 나아가 기업 간 폐자원 공급망을 구축하고, 실증 결과를 실제 산업 표준과 제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규제특례 12건…폐플라스틱 재활용 경로 넓힌다
4월 말 승인된 순환경제 규제특례 12건은 폐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과 포장폐기물 감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국내 폐플라스틱 재활용 방식별 비중은 열적 재활용 58%, 물질 재활용 41%, 열분해 등 화학적 재활용 1%다. 여전히 상당량의 폐플라스틱이 소각이나 열에너지 회수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특례에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합성수지를 열분해 원료로 활용하는 과제가 포함됐다. 폐합성수지는 현재 이물질 함량이 5% 이내여야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은 비교적 깨끗한 폐플라스틱을 대상으로 하는 물질 재활용을 전제로 설정돼 혼합·오염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는 열분해 방식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실증기간 폐기물 규제 일부를 유예하고, 폐합성수지의 이물질 함량과 열분해유 생산수율·성분, 환경 유해성 등을 검증한 뒤 화학적 재활용에 적합한 순환자원 인정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폐플라스틱 등을 원료로 만든 고형연료제품을 열분해 시설에 투입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현재 고형연료제품은 발전시설이나 산업용 보일러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실증을 통해 열분해유 생산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열분해 과정에서 발생해 주로 매립되던 잔재물을 토양개량제나 고형연료로 활용하는 과제도 포함됐다. 실증 결과 안전성과 환경성이 확인되면 별도의 폐기물 분류번호와 재활용 유형이 마련된다.
 

세탁세제 등 생활화학제품의 표시정보 일부를 QR코드로 제공하는 전자표시 실증도 진행한다. 표시 내용이 바뀔 때마다 포장재를 새로 제작하고 기존 포장재를 폐기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소비자 안전에 필요한 정보는 포장에 남기고 사용상 주의사항 등의 글자 크기를 키워 가독성을 높인다.

폐냉매 회수부터 가전 재사용까지
6월에 처음 지정된 순환경제 선도기업·산업단지는 전기·전자, 반도체 소재, 철강, 식품 등 4개 분야의 16개 기업·기관으로 구성됐다. 정부는 개별 기업의 폐기물 처리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재생원료를 생산하고 운송하고 다시 사용하는 기업들을 하나의 협력체계로 묶었다.
 

전기·전자 분야에서는 LG전자가 중심이 돼 에어컨과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폐냉매의 회수·관리체계를 구축한다. LX판토스가 폐냉매 운송을 담당하고, 칠서리사이클링센터와 오운알투텍이 이를 재생 냉매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경남테크노파크는 경남지역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폐냉매 회수·관리 표준체계를 마련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경기도 평택시 소재 엔에이치리사이텍컴퍼니에서 하드디스크 희토 영구 자석 회수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제공=기후부)

폐냉매는 적절하게 회수하지 않으면 대기 중으로 유출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회수·보관·운송·정제 단계가 서로 분리돼 체계적인 관리가 쉽지 않았다. 이번 사업은 가전제품 제조·유통·회수·재생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부분 불량이나 반품으로 폐기되던 전기·전자제품을 수리해 재판매하거나 재사용하는 ‘리퍼비시’ 체계도 실증한다.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수리·재사용은 제품을 폐기한 뒤 원료를 회수하는 재활용보다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리퍼비시 제품의 확산을 위해서는 성능과 안전성 검사, 보증기간, 수리 이력 공개, 부품 공급 등의 기준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반도체 부산물에서 희소금속 하프늄 회수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는 피케이씨(PKC)와 아데카코리아가 반도체 제조 공정 부산물에서 희소금속인 하프늄을 회수해 다시 반도체 소재로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하프늄은 반도체 절연막과 원자력산업 등에 사용되는 희소금속으로, 세계 생산량이 연간 70∼75톤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국가와 생산량이 제한돼 있어 반도체산업의 안정적인 원료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두 기업은 반도체 공정부산물에서 하프늄 재생원료를 생산하고 이를 전구체로 제조해 다시 반도체 공정에 투입하는 폐쇄형 순환체계를 실증할 계획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수입 핵심광물을 국내 폐자원으로 일부 대체할 수 있다. 정부는 하프늄 실증 결과를 토대로 다른 희소금속과 핵심광물로 협력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핵심광물 재활용은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자원안보 정책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국제 분쟁이나 수출통제, 원료 가격 변동으로 공급이 중단될 때 국내에서 회수한 재생원료가 산업 공급망의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 분진·슬래그·오니도 재생원료로
철강 분야에서는 포스코와 신진기업, 세림상운, 진평이 공정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슬래그, 오니류에 포함된 철과 탄소 등의 유가 성분을 분석하고 고품질 재생원료로 회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그동안 일부 공정부산물은 활용할 수 있는 성분이 남아 있는데도 폐기물로 분류돼 매립되거나 낮은 가치의 용도로 사용됐다. 부산물 성분과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철강 원료나 다른 산업의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제철은 흥진개발, 세움산업개발과 철강슬래그 등 공정부산물을 공유하고, 이를 슬래그 아스콘과 콘크리트용 골재 등으로 생산하는 협업체계를 구축한다.
 

기업 간 부산물 이동과 공동 활용에는 폐기물 운반·보관·처리 관련 규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필요할 경우 순환경제 규제특례를 적용해 기업들이 산업단지 안에서 부산물을 보다 원활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철강 부산물의 재활용을 확대하려면 중금속 용출, 부피 팽창, 장기적인 내구성 등 제품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 매립량을 줄였다는 이유만으로 순환이용 성과를 인정하기보다 기존 천연골재나 원료를 실제로 얼마나 대체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식품 부산물은 바이오가스로, 포장재는 단일재질로
식품 분야에서는 삼양식품과 강원바이오에너지가 참여한다. 삼양식품은 그동안 소각 처리하던 식품 제조 공정부산물을 바이오가스화해 에너지를 생산할 계획이다.
 

식품 부산물은 수분과 유기물 함량이 높아 소각 효율이 낮을 수 있다. 이를 혐기성 소화 방식으로 처리하면 메탄이 포함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일부 대체할 수 있다. 다만 발생한 소화잔재의 처리와 악취, 바이오가스 생산수율까지 포함한 전 과정 평가가 필요하다.
 

재활용이 어려웠던 식품 포장재의 구조도 개선한다. 라면과 과자 등 식품 포장재는 내용물의 산화와 수분 침투를 막기 위해 플라스틱 필름과 알루미늄 등을 여러 겹으로 접합한 복합재질이 많이 사용된다. 내용물을 보호하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서로 다른 재질을 분리하기 어려워 대부분 소각된다.
 

삼양식품은 포장재에서 알루미늄을 제거하고 재질을 단일화해 재활용성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한다. 포장재 경량화나 단일재질 전환은 폐기 이후 처리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제품 설계 단계에서 폐기물 발생과 재활용 문제를 줄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환경제 성과, 폐기물 처리량만으로 평가해선 안 돼
정부는 올해 선정된 기업·협력체와 함께 2026∼2030년 순환경제 세부 경영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폐기물 규제 개선과 실증특례, 중견·중소기업 공정개선 및 설비 설치, 공동 연구개발 과제 발굴 등을 지원한다. 그러나 순환경제가 산업정책으로 자리 잡으려면 단순히 폐기물을 얼마나 많이 처리했는지를 넘어 실제 자원 대체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가 연료로 소각되지 않고 새 플라스틱의 원료로 얼마나 사용됐는지, 폐냉매가 적정하게 회수돼 신냉매를 얼마나 대체했는지, 재생 하프늄과 철강 부산물이 수입 원료와 천연자원을 얼마나 줄였는지가 핵심 지표가 돼야 한다. 


재생원료 생산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와 온실가스, 대기·수질오염물질, 잔재물 발생량도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는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이 매립이나 에너지 회수보다 온실가스 감축에 유리할 수 있지만, 처리 대상과 에너지원에 따라 환경성과 경제성이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제품 감량과 재사용, 수리, 재제조, 물질 재활용, 화학적 재활용과 에너지 회수 사이의 우선순위도 분명히 해야 한다. 폐기물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제품의 수명을 늘리고 원료 투입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연결돼야 진정한 순환경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정부의 실증특례와 5년간의 맞춤형 지원은 순환경제 산업기반을 마련하는 출발점이다. 향후 실증 결과와 환경성 평가, 원료 대체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성공한 사업을 업종별 표준과 제도로 확산할 수 있느냐가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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