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8-12 11:15:43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인공지능(AI)은 흔히 데이터와 반도체, 전력의 산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AI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필수 자원이 필요하다.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고 반도체를 생산하며 전력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물이 그렇다. 이와 관련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7월 23일 물·에너지 융합 포럼을 열어 12개 과제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물-에너지 융합 포럼은 물과 에너지를 개별적으로 접근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두 분야의 정책·기술·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협업 협력체다.
AI, 에너지 해결책인가, 수요증가 원인인가
그러나 AI는 물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인 동시에 그 수요를 증가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AI를 물 관리에 적용하는 기술적 가능성만 강조하기보다 AI 산업 자체가 얼마나 많은 물과 전력을 소비하는지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데이터센터가 불러올 ‘물 수요 충격’
데이터센터는 서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제거하기 위해 냉각설비를 가동한다. 기존 공랭식 냉각은 전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대규모 시설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냉각탑이나 수랭식 냉각이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냉각수의 상당 부분이 증발해 유역으로 곧바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국환경연구원 한혜진 연구위원은 ‘Water-Energy-AI Nexus 활성화’ 토론회에서 민간에 공개된 국내 데이터센터 38곳의 자료를 토대로 현재 물 사용량은 연간 약 383만 톤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아직 국가 전체 용수 사용량과 비교하면 크지 않지만 데이터센터 설비가 급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38년 6GW 규모로 확대될 경우 연간 용수 수요가 약 4,370만 톤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추정도 제시됐다. 여기에 해외 대형 데이터센터가 추가로 들어오면 대도시의 생활용수 사용량에 맞먹는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 특히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는 통신망과 이용자 접근성, 운영 인력, 임대시장 등의 이유로 수도권을 선호한다. 그러나 수도권은 이미 대규모 인구와 반도체 산업단지가 동일한 수자원을 이용하고 있다. 전력망뿐 아니라 용수 공급망에도 부담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댐주변 수자원 이용해 데이터센터 배치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자원과 수열에너지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댐 주변에 대형 데이터센터를 배치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조은채 K-water 신성장전략단장은 “소양강댐 심층수는 연중 낮은 수온을 유지해 데이터센터 냉각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댐 주변은 대부분 산간지역에 있어 통신비와 전문인력 확보, 접근성, 민간사업자의 수익성 등의 문제가 남는다. 대규모 학습용 데이터센터는 지방 이전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용자와 빠르게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 도심형 데이터센터까지 댐 주변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결국 데이터센터 입지는 전력 공급 가능 여부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해당 지역의 가용 수량과 가뭄 위험, 용수 공급시설, 하수처리 능력, 냉각방식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물 관리에도 전기가 필요하다
물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취수와 정수, 펌프 이송, 하수처리, 재이용, 해수담수화에는 모두 전력이 필요하다. 수질 기준이 강화될수록 막여과와 고도처리, 송풍, 순환 공정에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된다.
권기원 한국환경공단 하수도처장에 따르면 전국에는 약 4,400개의 공공하수처리시설이 있으며 하루 처리용량은 약 2,700만 톤에 이른다. 실제 유입되는 하수는 하루 약 2,100만 톤, 처리 후 방류되는 물은 약 2,000만 톤 규모다. 하수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유입수 기준 약 168㎎/L에서 방류수 3.2㎎/L 수준으로 낮아져 약 98%의 오염물질이 제거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간 약 100만TOE(석유환산톤)의 에너지가 사용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공부문 전력 사용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고도처리시설과 막분리공정 등이 늘면서 최근 수년 동안 하수처리장의 에너지 사용량도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하수처리장을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소비시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자원을 생산하는 순환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수처리장 에너지 생성 가능하지만 AI 도입은 신중해야
하수처리장에서는 하수슬러지와 음식물류 폐기물 등 유기성 자원을 함께 소화해 바이오가스를 만들 수 있다. 넓은 시설 상부에는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하고, 처리수에서는 하수열을 회수할 수 있다. 정화된 하수처리수는 공업용수나 데이터센터 냉각수로 재이용할 수 있다.
처리장 위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바이오가스로 열과 전력을 만들며, 하수처리수로 데이터센터를 냉각한 뒤 회수된 열을 주변 지역의 난방에 공급하는 복합모델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하수처리장은 혐오시설에서 물·에너지·자원을 연결하는 ‘도시 에너지 허브’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스마트 하수처리장 사업은 기술 도입만으로 성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교훈도 남겼다. AI와 각종 센서를 도입해 전력과 약품 사용량을 줄였지만 유지관리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운영자가 방류수 수질기준 초과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최적 운전을 시도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장기간의 유지관리비와 데이터 품질관리, 운영자 교육, 수질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까지 포함한 사업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댐과 저수지, 발전시설을 AI로 관리
물과 에너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결합되는 시설은 댐과 수력·양수발전소다. 댐은 용수를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동시에 전력을 생산한다. 양수발전은 전력 수요가 낮을 때 물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렸다가 수요가 높을 때 내려 보내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대규모 ‘물 배터리’ 역할을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생산량의 변동을 보완하는 양수발전의 중요성도 커진다. 그러나 극한호우와 장기 가뭄이 반복되면 발전만을 목적으로 댐을 운영하기 어렵다. 홍수기에는 방류 시점과 방류량을 결정해야 하고, 가뭄 때는 발전보다 생활·농업용수 공급을 우선해야 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AI를 이용해 댐 유입량과 수위 변화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북한강 수계처럼 여러 댐이 계단식으로 연결된 지역에서는 상류 댐에서 방류한 물이 짧은 시간 안에 하류 댐으로 도달한다. 일부 댐은 운용 가능한 수위 폭이 50㎝∼1m에 불과해 강우량과 유입량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느냐가 안전을 좌우한다.
AI 예측모델을 이용하면 예상 유입량을 토대로 방류량과 수위 변화를 모의할 수 있다. 농업용 저수지에서도 AI 수위 예측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약 3,400개의 저수지를 포함한 농업기반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강릉 오봉저수지 등을 대상으로 기상청의 강우자료와 저수율, 유입량 데이터를 결합해 수위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재난 대응과 용수 공급 의사결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워터·에너지·AI 넥서스의 핵심은 결국 데이터다. 댐 수위와 유입량,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의 운전자료, 전력 수급, 산업별 용수 사용량이 연결돼야 AI가 통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물과 전력 데이터는 기관별로 서로 다른 형식과 단위로 관리되고 있다. 오류가 포함된 데이터를 그대로 AI에 학습시키면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
전력계획과 물 계획, 따로 세워서는 안 돼
현재 전력수급계획은 산업 변화에 대응해 비교적 짧은 주기로 수립되지만 수도와 수자원 관련 계획은 주기가 더 길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해도 이에 따라 필요한 용수량이 물 계획에 신속하게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물과 에너지를 연계하기 위한 12개 융합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양수발전 확대와 도시 단위 수열에너지 도입, 발전댐의 홍수 대응 기능 강화, 하수처리장 태양광발전과 데이터센터 연계, 전력·수도 지능형계량인프라(AMI) 통합, 발전소와 해수담수화를 결합한 지역 생산·지역 소비형 용수·전력 공급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수처리장과 변전소, 배수지, 열 공급시설을 하나의 공간에 복합화하고 물 관리 시설을 전력 수요관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수력발전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거나 발전소의 물 관련 기자재를 국산화하는 계획도 추진 대상이다.
다만 과제를 여러 개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넥서스 전략이 완성되지 않는다. 각각의 사업이 얼마나 많은 물과 전력을 절감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는지 공통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수력과 수열, 하수열, 바이오가스가 국가 전체 에너지 수요에서 담당할 수 있는 비중과 한계도 객관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물 관련 시설에 태양광과 수열에너지를 도입하더라도 국가의 근본적인 에너지 부족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여 가능한 범위를 과장하기보다 나머지 전력과 용수를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지까지 포함한 공급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AI 강국의 조건은 물 안보
AI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고 신규 댐 건설과 취수량 확대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하수처리수 재이용과 해수담수화, 빗물 이용, 폐쇄형 냉각, 수열에너지, 고효율 냉각기술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물을 생산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 ‘저탄소 물’의 개념도 필요하다. 같은 양의 물이라도 취수원과 처리 수준, 이송 거리, 재이용 여부에 따라 소비되는 에너지와 탄소발자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도체용 초순수처럼 고도의 정제 과정이 필요한 물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워터·에너지·AI 넥서스의 목적은 단순한 기술 융합에 있지 않다. 물과 에너지의 이용 효율을 높이고 기후재난에 대응하며, 국내 물·에너지 기술을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센터 물 사용량 공개, 물·전력 계획의 연계, 데이터 표준화, 지방 상하수도에 대한 재정지원, AI 의사결정의 책임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전력망만으로 AI 시대를 열 수는 없다. AI 강국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안정적인 물 공급과 물을 낭비하지 않는 산업구조다. 이제 물은 환경정책의 한 분야를 넘어 국가 에너지와 첨단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안보자원으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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