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솔 기자
eco@ecomedia.co.kr | 2017-09-04 11:30:12
입하(立夏)부터 입추(立秋)까지, 잡다한 여름 생물 사진을 나열해보다.
봄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여름은 지루했다. 장대비에 땅이 흠뻑 젖을 때마다 바람은 후텁지근해졌고, 공기는 끈적였으며 날이 개면, 햇볕은 더 뜨거워졌다. 거기에 몇 년만에 제대로 쏟아진 6월 장맛비까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옷이 땀에 절고 얼음과 에어컨만 찾게 되는 그저 그런 여름날의 하루 하루가 될 뻔했다.
하지만 높은 온도와 습도 그리고 가끔 쏟아지는 빗방울은 별 볼 것 없던 내 주변을 그야말로 하나의 다큐멘터리,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한 장면을 만들어줬다.
△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선선했던 5월 초, 넓적사슴벌레가 학교
근처 숲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볼 수 있었다.
어릴 적 한 번쯤은 키워보았던 사슴벌레를 야생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름을 맞이한 자연은 내게,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게 해주었다.
점점 온도와 습도는 더 높아졌고,그에 따라 모든 생명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식물과 동물이 종족 보존을 위해서 앞다투어 번식 활동을 시작한다.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새는 알을 품고 아기 새가 깨어나왔다.
학교 근처 숲에서 넓적사슴벌레를 처음 발견한지약 한 달 정도 지났다. 작년 이 맘때 보이던 파파리반딧불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가뭄 때문인지, 공해 때문인지, 살충제 때문인지 알 수 없어 걱정이 됐다.
날씨와 습도는 생명에게 중요한 요소인 듯하다. 파파리반딧불이가 예전보다 늦게 출현한 이유도, 자신들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 되기를 기다리던 중에 비가 내리고 조건이 갖추어지자 땅 속에서 번데기 상태로 기다리던 이들이 우화 하여 땅 밖으로 한꺼번에 여럿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파파리반딧불이의 빛은 몇 주 내내 바람이 잔잔한 밤마다 볼 수 있었다. 황홀한 광경이었다.
파파리반딧불이에마음을 뺏긴 사이, 아기 어치들은 무럭무럭 자라있었다. 어미 어치는 윤기 흐르고 보송거리던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학생과 교직원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정자의 처마 밑에 지은 둥지가 불안했는지, 어미는 항상 둥지를 지키고 있다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틈을 타 아기들이 먹을 곤충이나 지렁이를 잡아왔다.
그런 어미의 정성 덕분일까.어미의 깃털이 수척해질 때마다 아기들은 더 튼튼해지고 늠름해져 갔다. 아기들은 더 이상 아기라는 수식어가 맞지 않을 정도로 체격이 커졌고, 어미가 둥지 밖에서 매달려있어야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제는 아기들에게 먹여야 할 애벌레들이 대부분 번데기 과정을 거치며 나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아기들의 목숨과 생존은 어미에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기들은 어느 날 조용히 이소 하여 숲속으로 들어갔다. 어치는식물의 열매 뿐만이 아니라, 물고기, 도마뱀, 개구리, 심지어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를 잡아먹기도 하는 매우 난폭한 식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숲속의 깡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이 아기들도 머지않아숲속의 조류 세계를 평정할 것이다.
△ 어치의 보금자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보이던 대왕나비.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점유행동을 하며 땅에서 물을 빨아먹는 이들의 독특한 행동을 쉽게 볼 수 있다.
점점 습해지고 더워지니 곤충들이 살기 좋은 시기인 7월이 찾아왔다. 한편, 서울에서 하늘소가 대발생(Outbreak)하여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른 손가락 크기만한 하늘소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되는 딱정벌레이다. 희귀곤충인 장수하늘소(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급, 천연기념물 제218호) 다음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하늘소과(Cerambycidae) 곤충이라서, 곤충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장수하늘소로 오해를 받는 친구들이다.
하늘소는 무는 힘이 강한 턱을 가졌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피해를 본 서울 시민들 중 일부는 하늘소에게 물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물려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안다. 하지만 하늘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하늘소가 우글거리는 서울의 한 동네에서 거주하는 서울 시민이고 싶었다.
경기도 용인시의 내가 사는 마을은 하늘소가 많이 보이지 않고 적당한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밤에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날아들었다가 로드킬을 당한 개체가 간혹 보일 뿐이었다. 오히려 몸집이 큰 하늘소보다는, 주로 꽃가루나 꽃의 꿀을먹는 작은 크기의 하늘소를 많이 보았다.
△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낮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하늘소, 밤에 로드킬 당한 개체,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날아든 하늘소,
하늘소는 밤에 만날 수 있었다. 하늘소를 찾으면서 많은 딱정벌레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장수풍뎅이와 톱사슴벌레는 가로등 불빛에 자주 날아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가로등 불빛에 날아들었다가 길가에 많이 앉기 때문에 차에 치여 죽은 개체가 많았다. 이들이 길에서 죽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 이들의 활동 동선을 길가의 나무로 유도하기 위해서 나무에 특별한 액체를 발랐다.
수박 으깬 것과 식초, 설탕을 섞어 만든 '가짜 나뭇진'이다.
딱정벌레를 비롯한 곤충들은 시큼한 향이 나는 나뭇진을 먹기 위해서 상처가 난 나무에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습성을 이용해서, 새콤달콤한 향이 나는 가짜 나뭇진을 해질 무렵에 길가에서 자라는 밤나무에 발라놓으니, 정말로 늦은 밤에 이들이 날아들었다.
△ 가로등 불빛에 날아든 톱사슴벌레.
검정색의 넓적사슴벌레와 달리 적각색이 감돌며, 턱이 많이 굽은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딱정벌레들은 낮에 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곤충이다. 이러한 딱정벌레를 낮에 찾기란 쉽지 않다. 간혹 흐린 날에는 낮에 활동하기도 하지만, 비가 오게 되면 모두들 나무 구멍 같은 곳으로 깊숙이 숨어버린다.
여름밤은 곤충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인 듯하다. 매미가 약 75dB 정도의 지축을 울리는 소리로 여름밤이 떠나가도록, 지축이 울릴 정도로 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안타깝다. 도시 공원에 나가보아도 매미가 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그들의 탈피각도 가로수에 붙어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이 흔한 매미가 탈피각에서 나오는 모습, 즉 우화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사는 시골 동네에서는 매미를 찾기 쉽지 않아서, 이들이 우화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늦은 밤에 작정하고 인근의 도시 동네로 나가보았다. 매미 소리가 크게 나는 곳을 찾아 다니다가 한 아파트의 뒤뜰까지 오게 되었다. 정말 우화하기 위해서 나무를 천천히 기어오른 매미 약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스트로브잣나무를 기어오른 말매미 약충을 촬영했다. 미처 삼각대를 챙기지 못해서 쓰레기장에서주워온 종이 상자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1시간 반 동안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 막차를 놓칠 뻔했고, 부모님의 걱정을 사긴 했지만 너무 만족스러운 <말매미가 우화하는 동영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잠자리가 많이 보여서 촬영을 시도했다. 특히 왕잠자리의 연두색과 하늘색이 감도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촬영하려고 하였으나, 왕잠자리의 속도가 무척 빨라서 어려웠다. 어쨌든 촬영에는 성공했다. 거의 40장 찍어서 1~2장 건져낸 꼴이었다. 집에서 도감과 인터넷을 뒤져보니 왕잠자리의 최고 시속 100km까지 낼 수 있다고 한다.
△ 매력적인 색체와 특징이 돋보이는 잠자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나비처럼 천천히 날아다니는
나비잠자리, 노랑허리잠자리, 날개띠좀잠자리, 큰밀잠자리
이렇게 매일 생물을 찍으며, 여름과 방학을 지내니 가을이다. 비가 한 번 올 때마다 여름 더위가 쌓여갔던 날이 있었는데, 어느새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가을이 내려앉는다.
이번 여름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듯한 장면은 내 주변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늘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에는 게을러지기 쉽겠지만, 가을에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생명들의 역동적인 현상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오감을 집중해보고 싶다.
[그린기자단 권순호, 이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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