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23-05-18 12:35:31
풀의 목소리 - 신달자
이른 아침 풀을 뽑는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꽃밭에는 풀이 더 많다
풀은 등을 더 좋아하는지 돌아서는 순간 쑥 자라는
풀은
사납다 안면몰수다
땅의 힘이 풀의 힘인가
“히 볼테믄 히 봐!”
그 당찬 목소리 내 머리채를 잡아끄는데
풀 뽑는 내 두 손을 뽑아 버리려 덤비는데
한눈파는 사이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사이
풀은 더 크게 쑥 자란다
나에게 저런 끈질긴 옹고집이 있었더라면
그렇지…… 이렇게 살진 않았을지 몰라
으악스럽게 풀독처럼
내 두 팔을 기어이 기어오르는
저 목소리에 풀의 혈흔이 묻어 있다
내 온몸을 넘어뜨리며 덤벼드는
내 운명 같은 사나운 목소리
뒤에서 앞에서
두 발목을 잡고 통사정을 해도 놓아주지 않던
그 끈질긴 운명 같은 천명 같은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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