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07 22:18:02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 세계적으로 토양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침식으로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농업과 산불, 토지 이용 변화 등으로 토양 황폐화가 지속되면서 식량 생산뿐 아니라 수질과 기후,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간한 ‘세계 토양 자원 현황 2026(Status of the World's Soil Resources 2026)’ 보고서는 토양 침식을 전 세계 토양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이번 보고서는 최근 10년간 축적된 과학 연구와 전 세계 수백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 작성에는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UMass Amherst) 지구지리기후과학부의 아이작 라센(Isaac Larsen) 부교수도 주요 저자로 참여했다. 라센 교수는 북미지역 평가를 주도하면서 대륙 전반의 토양 황폐화 현황과 원인, 농업 및 산불 이후의 침식 문제, 지역별 차이와 토양 관리 개선 방안을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 문제의식은 토양의 손실과 회복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양은 암석의 풍화와 유기물 축적 등을 통해 매우 느리게 형성되지만 농경지에서는 경작과 강우, 바람 등에 따른 침식으로 훨씬 빠른 속도로 유실될 수 있다. 특히 농업지역의 표토 손실은 식량생산 능력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보고서는 라센 교수 등이 2021년 수행한 미국 중서부 콘벨트(Corn Belt) 연구를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연구진이 위성영상과 라이다(LiDAR) 자료 등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 경작지의 약 35%에서 유기물과 영양분이 풍부한 최상층 토양인 ‘A층(A-horizon)’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다.
A층은 식물의 뿌리가 자리 잡고 유기물과 영양분이 집중되는 토양층으로 농업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층이 침식되면 상대적으로 비옥도가 낮은 하부 토양이 노출되면서 작물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A층 손실로 미국 콘벨트의 작물 수확량이 평균 약 6% 감소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연간 약 28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 전체에서는 침식으로 약 14억톤 규모의 탄소가 구릉지 토양에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기존 토양 조사 방식이 실제 손실 규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과거 토양조사 자료에서는 조사 대상 콘벨트 지역 가운데 A층이 완전히 사라진 지역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위성영상과 정밀 지형자료를 이용한 분석에서는 약 3분의 1 이상에서 A층 소실이 확인됐다.
특히 볼록한 형태의 언덕 정상과 경사지에서 토양 손실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물에 의한 침식뿐 아니라 농기계를 이용한 반복적인 경작 과정에서 토양이 경사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경운 침식’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라센 교수 연구팀은 토양 침식을 파악하기 위해 위성영상과 고정밀 지형 측량, 지구화학적 분석 등을 활용해 과거 토양 손실까지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침식이 현재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뿐 아니라 인간의 토지 이용이 장기적으로 토양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FAO 보고서는 토양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경운을 줄이는 보전농업과 피복작물 재배, 작물 다양화, 농경지에 나무를 함께 심는 농림업 등을 제시했다. 경운 횟수를 줄이거나 무경운 농법을 적용하면 토양 구조를 유지하고 농기계에 의한 토양 이동도 감소시킬 수 있다.
토양 문제는 농업 생산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토양은 물을 저장하고 오염물질을 걸러내며 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토양 황폐화가 심화되면 가뭄과 홍수 대응 능력, 수질,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라센 교수는 “토양은 인류의 복지에 근본적인 자원”이라며 “토양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건강과 물, 기후, 일자리와 식량 자급 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식량의 미래는 결국 토양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토양 관리 방법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크게 늘었지만 실제 토지관리 방식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FAO 역시 이번 평가를 통해 토양 보호 기술 자체의 부족보다는 이미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실제 농업 정책과 토지관리 방식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토양 침식이 자연적인 회복 능력을 지속적으로 넘어설 경우 장기적으로는 농업 생산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