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6-22 15:24:41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생태적지혜연구소가 지난 6월 19일 북토크를 열고 신간 『플라스틱 소피아』를 통해 플라스틱 문명이 남긴 과제와 인간의 책임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북토크는 플라스틱을 단순한 환경오염의 원인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인간의 욕망과 산업 구조, 소비문화, 생태적 책임이 복합적으로 얽힌 ‘인공 사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저자 전병옥은 J&Soddy Partners 대표 겸 수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과학 커뮤니케이션과 순환경제 분야를 연구해왔다. 또한 플라스틱 문명이 만든 풍요와 위기의 양면성을 탐구해왔다. 특히 플라스틱 오남용과 폐기물 문제를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며, 순환경제와 녹색 혁신을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플라스틱 소피아』가 1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생태적지혜연구소 안팎의 대화와 연구를 거치며 책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먼저 플라스틱이 현대 문명 속에서 갖는 의미를 짚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하며, 만들기 쉬우며,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물질이다. 자연물 가운데 가벼운 물질이나 강한 물질은 존재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물질은 플라스틱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플라스틱은 짧은 시간 안에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그는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약 37번 정도 플라스틱을 접촉한다는 조사도 있다”며 “볼펜, 노트북, 전선 피복, 식품 포장재, 생활용품 등 일상 곳곳에 플라스틱이 들어와 있어 이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식주 전반이 플라스틱과 연결돼 있으며, 플라스틱 없이 살기를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북토크에서는 플라스틱이 단순한 물질을 넘어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킨 문명의 도구라는 점도 강조됐다. 저자는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 인간은 자연이 제공하는 재료의 한계 안에서 물건을 만들고 생활해야 했지만, 플라스틱은 그러한 제약을 크게 넘어설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일부 계층만 가질 수 있었던 장신구나 생활용품, 다양한 소비재가 플라스틱을 통해 대중화됐고, 이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문화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배경이 됐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스틱의 모순도 시작된다. 플라스틱은 인간이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도록 만든 물질이지만, 자연 속에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시간의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생수병 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도 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릴 수 있으며, 우리가 짧은 시간 사용한 물질이 생태계 안에서는 매우 긴 시간 남아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에는 ‘가치의 모순’과 ‘책임의 모순’도 존재한다. 소비자는 매우 낮은 가격으로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만, 그 제품이 환경에 남기는 비용은 훨씬 크다. 더구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사람과 피해를 입는 사람이 같지 않은 경우도 많다. 폐플라스틱은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고, 소각·매립·해양 유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와 사회적 약자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번 북토크에서 저자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실천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산업은 원유 채굴, 정제, 생산, 가공, 유통, 소비, 폐기까지 글로벌 공급망과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플라스틱 제품 하나가 여러 국가의 산업망을 거쳐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개인이 아무리 줄이려 해도 구조적 변화 없이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핵심 기준으로 ‘순환’을 제시했다. 철, 유리, 나무 같은 물질은 상대적으로 순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덜하지만, 플라스틱은 순환되지 않거나 순환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일상에서 어떤 물건을 사용할 때 “이것은 순환되는가, 아니면 순환을 끊어내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스틱 소피아』가 플라스틱을 무조건 없애자는 주장을 담은 책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미 현대인의 삶은 플라스틱과 깊이 결합돼 있고, 의료·위생·전기전자·식품 보관 등 여러 영역에서 플라스틱은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방향은 플라스틱 없는 삶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오래 쓰며 순환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플라스틱 소피아』가 담고 있는 내용은 명확하다. 플라스틱을 얼마나 더 만들고, 얼마나 더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자신이 만든 물질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플라스틱과의 공존은 단순한 절약이나 분리배출을 넘어, 문명의 속도와 소비의 욕망, 순환의 감각을 다시 묻는 생태적 지혜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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