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5-12-12 15:32:30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변하는 곳은 바다와 극지다. 전 지구 해수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잦아지는 해양 열파는 어업·양식·항만·연안도시 안전을 동시에 위협한다. 전문가들은 “해양 기후변화 감시·예측 시스템은 국가 경제와 재난안전의 초동 경보망이자 정책 나침반”이라며, 바다의 변화를 놓치면 어장·항로·연안 인프라 설계 기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양수산부, 2027년까지 해양·극지 기후정보 통합
해양수산부는 지난 10월 22일 켄싱턴호텔 여의도에서 열린 ‘해양 기후변화 감시·예측 포럼’에서 ‘해양·극지 기후변화 감시·예측 정보 통합 생산 및 제공 계획’을 제시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해수 온난화와 가팔라진 해수면 상승, 특히 한반도 주변 해역 수온이 전 지구 평균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제시됐다. 그로 인해 항만·어항 시설 피해, 양식장 고수온 피해 등 경제적 손실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23년 시행된 「기후변화 감시·예측법」에 따라 해양·극지 기후정보를 체계적으로 생산·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됐다. 해수부는 국립수산과학원, 국립해양조사원, 해양환경공단,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등 각 기관이 운영해 온 관측망 자료를 공유·통합해 공동 감시정보를 만들고, 한반도를 포함한 북서태평양을 대상으로 해수온·해수면 등 핵심 항목을 표준화해 제공할 계획이다.
연말부터는 해양수산 빅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수온·해수면을 과거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다. 나아가 2027년까지 별도의 ‘해양·극지 기후정보 전용 플랫폼’을 구축해 국민·산업계·지자체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개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전 지구 해양 관측망 ‘아르고’
전 지구 해양의 현재 상태를 3차원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핵심 수단으로는 국제 해양관측 프로그램 아르고(Argo)가 꼽힌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기후예측센터 권민호 센터장은 포럼에서 아르고의 의미와 한국의 역할을 짚었다.
아르고는 유네스코 산하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와 세계기상기구(WMO)가 공동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대양에 수천 개의 부이를 띄워 10일 간격으로 수온·염분 등을 측정한다. 이후에는 생물·화학 변수를 관측하는 BGC-Argo, 수심 4,000~6,000m 심해를 측정하는 Deep Argo로 확장되며, 해양의 열함량 변화와 지구온난화 진단의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
실제 아르고 관측이 본격화된 이후 바다 상층의 수온과 열함량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이 정량적으로 확인됐고, 이는 “지구온난화의 상당 부분이 바다 속에 축적되고 있다”는 경고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여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IOST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아르고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2009년 이후 예산 문제로 투하가 중단됐다가 최근 일부 재개했다. 지금까지 총 147기를 투하했지만 현재 가동 중인 부이는 15기 수준으로, 전 세계 4,600여 기 가운데 극히 일부에 그친다. 권 센터장은 2023년 채택된 해양 생물다양성 협약(BBNJ)이 공해역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BGC-Argo 등 생물·화학 변수 관측을 포함해 한국의 기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리안 해색위성의 성과와 후속 위성 과제
우주 기반 해양관측도 중요한 축이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국가해양위성센터는 정지궤도 해색위성 ‘천리안 2B호’를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 해역의 바다 색깔(클로로필, 탁도 등)과 해수면 온도를 고정밀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해양 기후변화 분석은 물론, 적조·녹조·유류 유출 등 해양 재난 대응의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박희윤 국가해양위성센터장은 “2010년 발사된 천리안 1호는 세계 최초의 정지궤도 해색위성으로, 우리나라가 해양위성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위성은 발사 후 10~15년이 지나면 임무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관측 공백을 막기 위한 후속 위성 기획이 필수적이다.
현재 해수부는 우주청 등과 협력해 2034~2043년 운영을 목표로 후속 해양위성을 기획하고 있다. 후속 위성은 공간 해상도는 유지하되 스펙트럴 밴드와 감도를 대폭 개선해, 향후에는 적조·녹조 등 조류의 종류까지 더 세분화해 구분·관측하는 것이 목표다.
현장 활용 넘어 기초 R&D와 거버넌스 개편해야
포럼 참석 전문가들은 해양·극지 기후정보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지속 가능한 체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단기 성과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 기초 연구에 대한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감시·예측 능력은 젊은 연구자의 양성과 지속 가능한 연구 환경에서 나오는데, 국내 의제에만 갇히지 말고 국제 연구 흐름과 보조를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해양·극지 기후정보는 수산, 해운·항만, 재난안전, 기상·기후 등 여러 부처와 연결돼 있지만, 해수부 실무에 전문 인력이 부족해 정책 판단 부담이 크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해수부와 현업기관 사이에 독립적인 전문 컨트롤타워를 두어 R&D 방향 설정, 국제기여 전략, 데이터·서비스 표준을 총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정적인 다년도 예산 확보도 빠지지 않았다. 매년 재심사로 사업 존속 여부가 흔들리는 구조에서는 위성·부이·극지 관측처럼 한번 끊기면 복구 비용이 큰 인프라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측모델·관측망·인력 양성을 하나의 패키지로 보고, 중장기 계획과 예산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문가들은 “바다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며 “해양과 극지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이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연구의 전초기지인 만큼, 지금이야말로 감시·예측 체계를 국가 전략 수준으로 끌어올릴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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