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디어=김한결 기자] 울산 소재 DN오토모티브 노동자들의 납 노출과 건강관리 실태를 둘러싼 논란이 국회 긴급토론회에서 집중 조명됐다.
특히 특수건강진단을 앞두고 혈중 납 수치를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킬레이션 치료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노동자들의 진술과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납 중독 관리가 작업환경 개선보다 혈중 납 수치 관리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킬레이션 치료가 특정한 임상적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지만 납 노출 노동자의 산업보건 관리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납이 노동자에게 노출되는 작업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DN오토모티브 노동자 납 중독 의혹 규명을 위한 전문가 긴급토론회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태선 의원(더불어민주당·울산 동구)은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DN오토모티브 노동자 납 중독 의혹 규명을 위한 전문가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산업보건학회와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는 노동계와 회사, 고용노동부 관계자, 직업환경의학·산업보건 전문가 등이 참석해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결과와 킬레이션 치료의 임상적 의미, 작업환경 관리 실태, 과거 납 노출 재구성 및 역학조사 방안 등을 논의했다.
노동자 176명 조사…“특수건강진단 전 킬레이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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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상철 단국대 교수첫 번째 발제에 나선 노상철 단국대 교수는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DN오토모티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에는 총 176명의 노동자가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21명은 혈액검사를 받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연구진은 부산·울산지역 의료기관을 방문해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 의무기록을 확보하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특수건강진단을 앞두고 혈중 납 농도를 낮추기 위한 킬레이션 치료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노동자들의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다.
노 교수에 따르면 일부 노동자들은 특수건강진단을 앞두고 혈중 납 검사를 실시한 뒤 기준을 초과할 경우 킬레이션 치료를 받고, 혈중 납 수치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뒤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방식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같은 진술을 근거로 “특수건강진단에서 혈중 납 수치가 기준을 넘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킬레이션은 납 노출의 근본적 해결책 아냐” 킬레이션 치료의 임상적 의미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장태원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부회장은 킬레이션이 체내 중금속과 결합하는 약제를 투여해 소변이나 대변 등을 통해 체외 배출을 촉진하는 치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납 노출이 있다고 해서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적으로 킬레이션 치료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혈중 납 농도와 임상 증상,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EDTA 계열 정맥주사제의 경우 납뿐 아니라 체내 필수 미네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신장 기능 등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장 부회장은 무엇보다 납에 노출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킬레이션보다 노출원 자체를 줄이는 작업환경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납 노출 문제를 노동자의 혈중 납 수치만으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납이 발생하는 공정과 작업방식, 환기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작업환경 측정했지만 실제 위험 놓쳤을 수 있어” 작업환경 관리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최영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박사는 DN오토모티브 사례를 계기로 작업환경 측정 방식과 산업보건 관리체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박사는 작업환경 측정이 실시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실제 현장의 위험요인을 제대로 찾아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형화된 작업을 중심으로 작업환경 측정이 이뤄질 경우 정비와 청소, 설비 이상 등 비정형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고농도 노출이 측정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작업환경 측정 시 정상적인 생산공정뿐 아니라 설비 이상이나 청소·정비 과정 등 다양한 작업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유해물질을 제거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유해한 물질로 대체하고, 대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공정 밀폐와 국소배기 등 공학적 대책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경험하는 냄새와 분진, 흄 등 이상 징후를 작업환경 조사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자가 단순한 조사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하며, 생산·구매·품질 등 실제 공정과 제품에 영향을 미치는 부서까지 참여하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과거 납 노출까지 재구성해야 현재의 혈중 납 농도만으로는 과거 작업환경에서 발생한 노출과 건강 영향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DN오토모티브 노동자들의 과거 납 노출 이력을 재구성하는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개인별 직무 이력과 근무기간, 작업 강도, 작업공정 등을 종합해 과거의 납 노출 수준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측정된 혈중 납 농도는 조사 시점의 노출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인 만큼, 과거 장기간의 작업환경과 건강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존 작업환경 측정자료와 특수건강진단 자료, 직무 이력 등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작업환경 측정과 자료 분석을 실시하고, 기존 자료의 신뢰성과 활용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 교수는 국내 산업보건 감시체계가 특정 산업이나 직무에서 발생하는 집단적 건강 이상을 조기에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동자나 노동조합 등의 문제 제기가 발생한 뒤 정부가 대응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단적인 건강 이상 신호가 나타났을 때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놨다.
노동부 “현장 감독·작업중지…역학조사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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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 신백우 산업보건정책과장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DN오토모티브에 대해 진행한 감독과 조치 내용을 설명했다.
신백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정책과장은 올해 1월 27일 울산지청과 금속노조 울산지부의 면담 과정에서 DN오토모티브의 혈중 납 및 킬레이션 관련 문제를 인지했다고 밝혔다.
이후 2월 현장 확인과 예비조사를 실시했으며, 3~4월에는 현장점검과 노사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3월 23일부터 4월 17일까지 사업장 안전보건 감독을 실시했고, 직업환경의학 전문가와 안전보건공단 산업보건 전문가가 참여한 정밀 작업환경 측정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납 노출 공정에 대해 작업중지 및 사용중지 명령을 내리고 사업주에 대한 사법조치와 행정처분을 실시했으며, 배터리 제조 동종업종 1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획감독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또 DN오토모티브에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안전보건진단과 노동자 건강상태 확인을 위한 임시건강진단을 명령했지만, 노사 간 이견으로 아직 시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13일 DN오토모티브와 킬레이션 의료기관에 대해 각각 관련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신 과장은 지난 9월 8일 담당 사무관들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으며, 15일에는 노사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또 역학조사평가위원회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하기로 의결했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사안을 특정 사업장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 산업보건 체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국소배기 등 작업환경 개선 여부 따져야”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작업환경 개선과 정부의 관리·감독 과정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세민 일터안전센터장은 DN오토모티브 현장의 국소배기장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부의 조치가 충분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납과 황산 등이 노출되는 여러 공정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 보호조치와 작업환경 개선이 충분히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문제가 제기된 이후 실제 작업환경 개선이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과정에 대해서도 노동부의 감독과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현장 감독과 작업중지, 행정·사법 조치 등이 진행됐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향후 작업환경 개선을 추가로 지도하겠다는 입장이다.
“DN오토모티브 넘어 납축전지 업계 전반 점검해야” 토론회에서는 이번 논란을 DN오토모티브 한 곳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납축전지 제조업 전반의 산업보건 관리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장 노동자들은 납축전지 제조업체 전반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작업환경 측정기관의 독립성과 특수건강진단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사업주가 부담하는 현행 구조에서 측정기관과 의료기관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노동조합이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건강진단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는 납과 같은 유해인자를 다루는 사업장에서 측정-진단-개선-재측정으로 이어지는 산업보건 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
국정감사서 회사·정부 대응 다시 검증 김태선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다시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DN오토모티브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 납에 노출됐는지, 왜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산업보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정감사를 통해 회사와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및 대응 과정을 따져보고 노동자 건강보호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쟁점은 크게 ▲노동자의 실제 납 노출 수준과 건강 영향 ▲특수건강진단 전 킬레이션 치료의 경위와 적절성 ▲작업환경 측정 및 국소배기 등 공학적 관리의 실효성 ▲과거 납 노출 이력에 대한 역학조사 ▲정부의 감독·조사체계와 제도적 공백 등으로 정리된다.
결국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납 노출 문제의 출발점을 노동자의 혈중 납 수치가 아니라 작업환경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혈중 납 농도를 낮추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업장에서 반복되는 납 노출을 해결할 수는 없다.
유해물질의 발생원을 줄이고 공정을 밀폐하며 국소배기 등 공학적 대책을 강화하고, 작업환경 측정에서 놓칠 수 있는 비정형 작업까지 관리하는 것이 근본적인 예방대책이라는 것이다.
DN오토모티브를 둘러싼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는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와 역학조사 등을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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