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7-06 15:45:55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올해 국내 플라스틱 정책의 변화가 소비자 일상과 생산·유통 현장으로 동시에 확산되고 있다. 먹는샘물 무라벨 의무화가 시작된 데 이어, 대형 생수·음료 업체에는 무색 페트병 제조 시 재생원료를 10% 이상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회용컵 가격을 영수증에 별도로 표시하는 이른바 ‘컵 따로 계산제’도 추진될 예정이었지만 정책 변화로 인해 시행되지 않기로 했다, 이제 플라스틱 감축 정책은 단순한 분리배출 캠페인을 넘어 제품 설계, 원료 조달, 소비 행태 전반을 바꾸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무라벨 제품 올해부터 본격시행
무라벨 전환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라벨을 떼어내야 하는 분리배출 부담을 줄이고, 재활용 현장에서는 투명 페트병의 선별 품질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제품 정보 확인 방식이 QR코드 등으로 바뀌는 만큼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보 접근성, 낱개 판매 제품의 식별과 결제 시스템, 유통 현장의 혼선 최소화는 제도 안착의 과제로 남는다.
‘닫힌 고리’ 순환체계 만들어
생수·음료업계에는 원료 단계의 규제도 본격화됐다. 환경부는 2026년 1월부터 연간 5천 톤 이상 페트병을 사용하는 먹는샘물 및 비알코올 음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의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 의무사용률은 10%로 적용되며, 무색 페트병 제작에는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거친 재생원료만 사용할 수 있다. 정부는 향후 2030년까지 적용 대상을 연간 1천 톤 이상 사용업체로 확대하고, 의무율도 10%에서 3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는 폐페트병을 다시 페트병 원료로 투입하는 ‘닫힌 고리’ 순환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국내 재활용 시장에서는 고품질 투명 페트병이 섬유 등 다른 용도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식품용기 수준의 재생원료 수요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면 선별·세척·재활용 산업 전반의 투자 구조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컵 따로 계산제’ 포함한 일회용품 감축 방안
일회용컵 정책도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쟁점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 주요 업무계획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포함한 일회용품 감축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방안 또한 소비자 혼란과 실효성 논란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컵 따로 계산제는 음료값에 이미 포함돼 있는 일회용컵 비용을 영수증에 별도로 표시해 소비자가 컵 사용 비용을 인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 제도가 컵값을 추가로 부과하는 가격 인상 정책이 아니라, 현재 지불 중인 비용을 드러내 다회용컵 사용 유인을 높이려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 플라스틱 정책의 핵심은 ‘보이지 않던 비용의 가시화’다. 라벨은 사라지지만 제품 정보는 다른 방식으로 남고, 새 플라스틱 사용은 줄어들지만 재생원료 사용 의무는 숫자로 관리된다. 일회용컵 역시 공짜처럼 보였던 비용을 영수증에 드러내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삼게 하겠다는 흐름이다.
공공 음수대와 텀블러 사용 탄소 저감 행동으로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병입수와 일회용컵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먹는물네트워크 백명수 소장은 최근 “페트병 대신 수돗물을 마시는 행동 자체가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탄소 회피 행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라벨 생수병을 잘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페트병을 구매하지 않고 공공 음용수를 마시는 선택이 탄소 저감과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백 소장은 특히 야외 공공 음수대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들이 수돗물을 마시지 않으면서 공공 음수대도 사라지고 있다”며 “공공 음수대는 단순한 급수 시설이 아니라 공중위생, 열린 도시공간, 보편적 물 접근권을 구성하는 기반시설이었다”고 지적했다. 병입수를 사서 마시는 문화가 확대되면서 공공 음수대가 줄고, 그 결과 다시 병입수 의존이 커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 음수대와 텀블러 사용을 탄소 저감 행동으로 정량화하고, 이를 시민 인센티브와 연결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예컨대 IoT 기술을 적용한 음수대나 텀블러 이용 시스템을 통해 시민이 병입수 대신 수돗물을 마신 양을 확인하고, 이를 회피된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시민 참여형 탄소 저감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백 이사는 서울시 건강 플랫폼이나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과 같은 시민 참여형 보상체계와 연결할 경우, 공공 음용수 이용이 보다 직관적인 기후행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봤다.
생산·유통업계 책임 강화와 시민주체 행동 시험대로
현재의 무라벨 의무화와 재생원료 사용의무는 이미 생산·소비된 페트병을 어떻게 더 잘 순환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공공 음용수 활성화는 애초에 페트병 사용을 줄이는 원천 감량 전략에 가깝다.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실질적 감축 효과를 내려면 재활용률 제고와 함께 병입수 소비를 줄이는 생활 인프라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올해와 내년의 플라스틱 정책은 두 갈래 시험대에 서 있다. 하나는 무라벨·재생원료·컵 따로 계산제처럼 제품과 가격 구조를 바꾸는 제도적 전환이다. 다른 하나는 공공 음수대, 텀블러, 수돗물 음용처럼 소비 자체를 줄이는 생활 기반의 전환이다. 전자가 생산·유통업계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이라면, 후자는 시민이 일상에서 탄소 저감의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다만 제도 성패는 현장 이행에 달려 있다. 무라벨 생수는 소비자 정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고, 재생원료 의무화는 안정적 수급과 가격 부담을 관리해야 한다. 컵 따로 계산제 역시 소비자에게 추가 요금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명확한 안내가 필요하다. 여기에 공공 음용수 활성화까지 연결하려면 공공 음수대의 위생 관리, 시민 신뢰 회복, 탄소 저감량 산정 기준, 인센티브 지급 방식 등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
플라스틱 순환경제는 이제 폐기물 처리장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손에 들린 생수병과 일회용컵, 그리고 도시 곳곳의 음수대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라벨을 없애고, 재생원료를 늘리고, 컵값을 드러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입수 소비 자체를 줄이는 사회적 실험이 병행될 때, 플라스틱 감축 정책은 시민이 체감하는 기후행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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