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8-11 22:48:36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각국의 규제 강화와 위성·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감시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규모의 불법·미신고 어업이 세계 해양 자연산 어획량의 최대 15%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불법어업을 단순한 일부 선박의 일탈이 아니라 보조금과 불투명한 선박 소유구조, 국제 공급망 등이 결합된 세계 수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필립 르 빌롱 교수와 라시드 수마일라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불법어업이 어떻게 운영되고 어느 지역에 집중되는지, 그리고 국제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에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산업적 규모의 불법·미신고 어업은 전 세계 해양 자연산 어획량의 약 8~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통해 유통되는 불법 수산물 거래 규모는 매년 62억~122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법어업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지만 피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금액 기준 불법 수산물 거래의 약 3분의 2가 서아프리카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다. 이들 지역은 어업이 식량 공급과 고용,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해양 감시와 단속 역량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반면 불법적으로 잡힌 수산물 상당량은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의 상대적으로 부유한 소비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마일라 교수는 이에 대해 환경적·사회적 비용은 주로 개발도상국 연안국과 지역사회가 부담하는 반면 경제적 이익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불평등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불법어업으로 어족자원이 감소하면 지역 어민의 합법적 어획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정부의 세수와 어업 수입도 감소한다. 특히 수산물에 대한 식량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어획량 감소가 식량·영양 안보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불법어업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어획 이후의 복잡한 유통구조에 있다. 연구진은 해상 환적과 허위 서류 작성, 어종 오표시, 합법 어획물과 불법 어획물을 섞는 방식 등을 대표적인 수산물 ‘세탁’ 수법으로 지목했다. 불법으로 잡힌 수산물이 한 번 국제 공급망에 들어가면 항구와 가공업체, 유통·소매 단계를 거치면서 원산지와 어획 과정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양어업에 종사하는 대규모 선단은 여러 국가의 해역과 공해를 이동하는 데다 해상에서 다른 선박으로 어획물을 옮기는 환적을 활용할 수 있어 추적이 더욱 어렵다.
일부 선박은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가에 등록하는 이른바 ‘편의치적(flags of convenience)’을 활용하거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선박 등록을 변경하기도 한다. 복잡한 기업 네트워크를 이용해 선박의 실제 지배자, 즉 ‘실소유자(beneficial owner)’를 숨기는 것도 단속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연구진은 특히 연료비를 비롯해 어선의 조업 능력을 확대하는 일부 보조금이 대형 원양어선의 장거리 조업을 가능하게 하면서 불법어업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위성 선박추적과 AI, 전자 모니터링 기술의 발전으로 의심스러운 조업 활동을 찾아내는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연구진은 ‘더 잘 보는 것’과 ‘실제로 처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가마다 집행 기준이 다르고 국제 공조가 분절돼 있는 데다 위반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벌금이나 제재 수준이 낮다면 첨단 감시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억제 효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진은 불법어업을 줄이기 위해 유해한 수산보조금을 축소하고 선박 전자식별을 강화하는 동시에 항만국 통제, 선박 실소유자 정보 공개, 국가 간 정보공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규모 어업과 원주민 공동체의 어업권을 보호하고 지역 공동관리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국제사회에서도 관련 제도는 강화되고 있다. WTO의 수산보조금협정(Agreement on Fisheries Subsidies)은 2025년 9월 발효돼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등에 지급되는 유해 보조금에 대한 다자간 규율을 마련했다. 다만 과잉어획과 과잉어획능력을 유발하는 보조금까지 포괄하기 위한 추가 규범 협상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유엔의 국가관할권 이원지역 해양생물다양성협정(BBNJ·이른바 공해조약)도 2026년 1월 17일 발효됐다. 다만 이 협정의 핵심 목적은 공해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불법어업을 직접 규율하는 협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국 역시 2025년 4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항만국조치협정(PSMA) 당사국이 됐다. PSMA는 IUU 어업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 어선의 입항이나 항만 이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해 불법 어획물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국제협정이다.
불법어업의 피해는 어족자원 고갈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정부와 연안 지역사회의 경제적 손실, 식량·영양 불안정뿐 아니라 어선에서 발생하는 강제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육상 감시망에서 멀리 떨어진 원양어선에서 근무하는 선원 수만 명이 강제노동이나 안전하지 않은 노동조건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어업이 부패와 밀수, 해양안보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구진은 결국 불법어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다에서 불법 조업 선박을 적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해 보조금으로 조업을 지원하는 단계에서부터 선박 소유관계, 해상 환적, 항만 반입, 가공·유통과 최종 소비시장까지 수산물 공급망 전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