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매우 강한 엘니뇨, 중대한 보건 위협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9-23 22:09:57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올해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엘니뇨가 폭염과 가뭄, 홍수뿐 아니라 감염병과 영양실조까지 악화시키는 ‘위험 승수’가 될 수 있다는 유엔의 경고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상 재난이 취약한 보건체계와 식량 불안, 강제이주, 분쟁과 결합할 경우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로 번질 수 있다며 각국에 조기 대응을 촉구했다.

테레사 자카리아 WHO 위험감소·인도주의활동·기후변화 담당 부서장은 22일 유엔 제네바 정례 브리핑에서 “엘니뇨의 가장 심각한 영향은 기후 충격이 취약한 의료체계와 제한된 의료 접근성, 식량 불안, 이주 및 인도주의적 위기와 겹치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WHO는 엘니뇨를 하나의 질병을 직접 일으키는 원인이라기보다 기존의 건강 위험을 증폭하는 요인으로 평가한다. 폭염은 심혈관·호흡기·신장·대사질환과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키고, 산불 연기와 대기오염은 호흡기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가뭄과 홍수는 주택과 생계를 파괴하고 식량·식수·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중부와 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전 세계의 기온과 강수 패턴을 변화시키는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다. 기후변화가 엘니뇨 자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온난화된 대기와 해양에 엘니뇨가 더해지면 극한 고온과 가뭄, 집중호우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일 발표한 전망에서 엘니뇨가 앞으로 수개월 동안 ‘매우 강한’ 수준으로 발달해 연말께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엘니뇨가 2027년 2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거의 100%로 제시했다. 기후 영향은 엘니뇨가 정점을 지난 뒤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WHO가 WMO와 공동으로 작성한 ‘엘니뇨 2026 세계 공중보건 상황 분석’은 홍수와 가뭄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건강을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집중호우와 홍수는 상하수도 시설을 파손하고 식수를 오염시켜 콜레라와 설사성 질환의 확산 가능성을 높인다. 반대로 가뭄도 물 부족과 위생 악화, 오염된 수원 이용을 초래해 콜레라 위험을 키울 수 있다. WHO는 콜레라와 영양실조를 가뭄·홍수 지역 모두에서 ‘매우 높은 위험’으로 평가했다.

가뭄과 홍수로 농작물 생산과 가계 생계가 타격을 받으면 식량 가격이 오르고 영양실조가 늘어날 수 있다. WHO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1억5천만명 이상이 급성 식량 불안에 직면해 있으며, 엘니뇨에 따른 농업 생산과 생계 차질로 그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어린이와 임신부, 수유부는 영양 부족의 영향을 특히 크게 받을 수 있다.

기온과 강수량 변화는 모기와 같은 감염병 매개체의 서식 조건도 바꾼다. 폭우 뒤 생긴 웅덩이뿐 아니라 가뭄 때 물을 저장한 용기와 정체된 물도 모기 번식지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말라리아와 뎅기열, 치쿤구니야, 황열,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기존 유행지역에서 증가하거나 고지대와 온대지역 등 과거 발생이 드물었던 곳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자카리아 부서장은 “엘니뇨의 건강 영향은 예측할 수 있다”며 “위험이 위기로 바뀌기 전에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WMO는 이번 엘니뇨가 이미 기록적으로 높은 세계 기온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아르멜 카스텔란 WMO 극한더위 기술고문은 “모든 엘니뇨는 서로 다르지만, 이번 엘니뇨는 기온이 이미 기록적인 수준인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엘니뇨가 연말 정점에 도달할 무렵 남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호주 등 남반구 주요 지역은 가장 더운 계절로 접어든다. 계절적 고온에 엘니뇨가 겹치면 가뭄과 산불, 연기와 대기오염 위험이 연쇄적으로 커질 수 있다.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려 홍수와 산사태, 수인성 감염병 위험이 높아질 전망이다.

WHO와 WMO는 국가별 기상 예보를 보건 대응과 연결하는 ‘기후정보 기반 보건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은 지역별 위험을 반영해 감염병 감시를 강화하고, 의료기관이 홍수와 폭염에도 운영될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보완해야 한다. 고위험 지역에는 의약품과 식수·위생 물품을 미리 배치하고, 폭염·대기질·감염병 조기경보를 지역 보건당국과 주민에게 신속히 전달해야 한다.

특히 분쟁지역과 난민·이주민 거주지, 의료시설이 부족한 저소득 지역은 같은 기후 충격에도 피해가 훨씬 커질 수 있다. 엘니뇨의 강도만큼이나 의료 접근성과 사회보장, 식량·식수 공급체계가 실제 인명 피해를 결정한다는 것이 유엔의 설명이다. WHO는 “지금 대응하는 국가와 지역사회는 엘니뇨의 영향을 줄이고 생명 손실과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며 사후 복구보다 기상 전망을 활용한 선제적 보건 대응에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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