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제로 늦어질수록 태평양 엘니뇨형 변화 오래간다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14 22:41:56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 시점을 앞당길수록 열대 태평양에서 나타나는 장기적인 엘니뇨 유사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하더라도 심해에 축적된 열 때문에 해수온과 바람, 강수 패턴의 변화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와 ARC 21세기 기상 우수센터 연구진은 지구온난화가 열대 태평양에 미치는 영향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중단된 이후 해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후모델을 통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면 대기와 해수면의 온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조정될 수 있지만 심해는 전혀 다른 시간 규모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바다 깊은 곳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열을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기 때문에 과거 온실가스 배출의 영향을 장기간 간직한다.

논문 수석저자인 멜버른대학교 아디티아 센굽타(Aditya Sengupta) 연구원은 “대기와 해수면은 비교적 빠르게 조절될 수 있지만 심해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열을 흡수하고 방출한다”며 “이는 바다가 과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긴 기억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열대 태평양 기후변화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 사실상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탄소 배출이 오래 지속될수록 기후 시스템 내부에 더 많은 열이 축적되고, 그만큼 장기적인 해양 변화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열대 태평양의 평균적인 기후 상태가 현재보다 엘니뇨와 유사한 형태로 변할 가능성이 나타났다.

열대 태평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쪽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높고 동쪽이 상대적으로 낮은 동서 수온 차이가 형성된다. 이러한 수온 차이와 무역풍, 해류의 상호작용이 엘니뇨-남방진동(ENSO)을 만들어낸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따뜻한 표층수가 평소보다 동쪽으로 확장되고 남미 연안의 차가운 심층수 용승은 약해진다. 이에 따라 열대 태평양의 대기순환과 강수대가 이동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의 가뭄과 홍수, 폭염, 산불 등에도 영향을 준다.

연구진은 온난화가 진행되면 이와 유사하게 서태평양과 동태평양 사이의 평균적인 수온 차이가 약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태평양이 계속 엘니뇨 상태에 고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반복되는 ENSO 자체와 별개로, 그 현상이 발생하는 배경 기후가 엘니뇨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9개의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해 이러한 변화를 비교한 뒤 호주의 지구시스템모델을 활용해 21세기 서로 다른 시점에서 탄소 배출을 중단한 후 1000년 동안 기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탄소 배출이 중단된 뒤에도 열대 태평양의 해수온과 대기순환 변화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장기간 지속됐다. 특히 심해에 축적된 열이 천천히 방출되면서 해양의 조정 과정이 수세기에 걸쳐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순 제로에 도달하면 기후 시스템이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기대와는 차이가 있다. 배출을 멈추는 것은 추가적인 온난화를 제한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미 바다에 축적된 에너지까지 즉각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히려 순 제로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 공동저자인 멜버른대학교 앤드루 킹(Andrew King) 부교수는 “배출량을 빠르게 줄이는 데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며 “순 제로에 일찍 도달하면 해양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규모를 제한하고 미래 세대가 크게 달라진 열대 태평양을 마주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순 제로 달성이 늦어질수록 더 많은 열이 심해에 축적되고, 이후 탄소 배출을 멈추더라도 해양이 그 영향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열대 태평양의 장기 변화는 태평양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ENSO는 전 세계 대기순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기후 변동으로, 호주와 남미뿐 아니라 아시아와 북미 등 여러 지역의 강수량과 가뭄, 홍수, 기온 변동에 관여한다. 따라서 열대 태평양의 평균적인 상태가 변화하면 현재의 기후를 기준으로 구축된 농업과 수자원 관리, 재난 대응체계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빠른 감축은 미래 해양 변화의 크기를 제한하는 데 필요하지만, 이미 진행된 변화 가운데 일부는 순 제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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