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납 중독 예방 가능한데도 아동 수억 명 노출돼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16 22:30:58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수억 명의 어린이가 납에 노출돼 있다며 각국에 납 함유 제품 규제와 오염원 제거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납 중독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연간 350만 명 이상의 사망과 연관된 주요 환경보건 문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WHO는 ‘2026 국제 납중독 예방주간’을 앞두고 각국 정부에 납 노출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정책과 규제 집행을 가속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예방주간은 10월 18~24일이며 주제는 ‘탐지에서 예방으로(From Detection to Prevention)’다.

WHO에 따르면 납은 안전한 노출 수준이 알려져 있지 않은 독성 금속이다. 체내에 들어오면 뇌와 간, 신장, 뼈 등으로 이동해 축적되며 빈혈과 고혈압, 신장기능 손상, 면역독성, 생식독성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신경계가 발달 중인 어린이는 납에 훨씬 취약해 낮은 수준의 노출에서도 장기간 또는 비가역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제보건측정평가연구소(IHME)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에서 납 노출과 관련된 사망자는 3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대부분 심혈관계 영향과 관련돼 있다. 질병으로 건강하게 살지 못한 기간을 나타내는 장애보정생존연수(DALYs) 손실도 전 세계적으로 7150만 년 이상으로 추산됐다.

어린이에 대한 부담도 크다. WHO는 관련 국제추계를 토대로 전 세계 어린이 가운데 최대 8억1500만 명, 약 3명 중 1명이 납 중독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저소득·중소득 국가의 부담이 특히 크며, 납 노출에 따른 인지능력과 교육성과 저하는 장기적으로 개인의 소득과 국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납 노출은 특정 산업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납이 들어 있는 페인트와 조리기구, 화장품, 향신료를 비롯해 비공식 폐배터리 재활용, 광업·제련 및 각종 산업오염 등이 주요 노출원으로 지목된다. 납을 함유한 물질을 태우거나 녹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입자를 흡입하거나, 오염된 먼지·토양·물·식품을 섭취하면서 체내로 들어올 수 있다.

특히 어린이는 성인보다 같은 양의 납을 섭취했을 때 체내 흡수율이 높다. WHO에 따르면 어린이는 섭취한 납을 성인보다 최대 4~5배 많이 흡수할 수 있으며 손이나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행동도 노출 위험을 높인다. 납이 포함된 토양과 먼지, 페인트 등이 어린이에게 더욱 위험한 이유다.

WHO는 현재 알려진 ‘안전한 혈중 납 농도’는 없다고 강조한다. 어린이의 경우 혈중 납 농도가 3.5㎍/dL 수준에서도 지능 저하와 행동 문제, 학습장애와 연관될 수 있다. WHO가 2021년 발표한 임상관리 지침은 혈중 납 농도가 5㎍/dL 이상이면 노출원을 찾아 제거하고 추가 노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납 노출을 예방하기 위한 각국의 규제 수준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WHO의 최신 공개 평가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전 세계 국가 가운데 납 페인트의 생산·수입·판매·사용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규제를 갖췄다고 확인된 국가는 약 48%에 그쳤다. 절반 이상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납 페인트 관리체계가 확인되지 않은 셈이다.

WHO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함께 ‘납 페인트 퇴출을 위한 글로벌 동맹’을 운영하면서 모든 국가가 납 페인트의 제조와 수입·수출, 유통, 판매 및 사용을 제한하는 법적 규제를 마련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혈중 납 농도를 실제로 검사할 수 있는 국가의 분석 역량을 확대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WHO는 브라질과 인도 5개 주, 네팔을 비롯해 에티오피아·가나·말라위·르완다·남아프리카공화국·탄자니아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서 혈중 납 검사를 위한 실험실 역량과 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WHO 회원국들은 납 노출을 주요 공중보건 문제로 인정하고 WHO에 ‘납 저감을 위한 글로벌 행동계획(Global Action Plan on Lead Mitigation)’을 마련하도록 요청했다. WHO는 이 계획을 2027년 세계보건총회에 제시할 예정이다.

WHO는 이와 함께 국가가 납 오염원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규제를 도입·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PREVENT 납 중독 예방 기술 패키지’도 2027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노출원 및 노출 수준 파악, 고농도 노출에 대한 대응, 규제 점검·집행, 이행성과 추적 등이 포함된다. WHO는 납 중독 예방 개입의 편익이 비용을 크게 웃돌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WHO는 특히 인식 제고만으로는 납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페인트나 조리기구, 화장품, 폐배터리 재활용 등 실제 납 노출원이 시장과 생활환경에 유입되지 않도록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각국은 납이 어린이의 혈류에 도달하기 전에 제품과 환경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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