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15 22:41:02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업이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제품을 없애는 것보다 친환경 제품을 추가할 때 소비자들이 더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배스대학교를 비롯해 프랑스 오덴시아 비즈니스스쿨, 에멜론 비즈니스스쿨, 포츠머스대학교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호텔과 소비재, 컨퍼런스, 축제, 무역박람회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9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Journal of the Academy of Marketing Science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경향을 ‘지속가능한 추가 편향(sustainable addition bias)’이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로 폐기물과 자원 사용량을 줄이는 데는 제품을 없애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는 친환경 제품이 추가될 때 기업의 지속가능성 노력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연구를 이끈 배스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딜레타 아쿠티(Diletta Acuti) 박사는 “사람들은 기업이 친환경적인 제품을 더 많이 제공할수록 더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지속가능성은 반드시 무언가를 더 추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속가능성은 생산 자체를 줄이고 자원을 보존하며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피하는 것과도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사용 가능한 컵이나 물병, 토트백이다. 이들 제품은 일회용품을 대체한다는 점에서는 환경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되고 배포될 경우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과잉소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쿠티 박사는 자신 역시 컨퍼런스와 행사 등에서 받은 토트백을 약 20개 가지고 있다며 “재사용 가능한 가방 하나는 유용하지만 사람들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를 생산하고 배포하면 지속가능한 아이디어가 과소비의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호텔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 호텔 투숙객 302명을 대상으로 객실의 친환경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재사용 가능한 병이나 유기농 세면도구 등 친환경 제품을 더 많이 배치한 객실이 최소한의 제품만 제공한 객실보다 더 지속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실제 환경 영향을 따질 경우 결과는 반드시 같지 않을 수 있다. 객실에 친환경 제품을 추가할수록 생산과 포장, 운송, 폐기 등에 추가적인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런 인식 차이가 ‘가시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는 대나무 소재의 액세서리나 재사용 물병, 친환경 세면도구와 같은 물건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기업이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면 기업이 자원 절약을 위해 불필요한 제품을 없애더라도 소비자는 이미 사라진 물건을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폐기물을 줄이는 조치가 실제 환경효과와 관계없이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아쿠티 박사는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은 보이지만 제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며 “기업이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불필요한 제품을 없애면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훨씬 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품을 제거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호텔에서 여러 개의 소형 세면도구 용기를 없애고 리필형 디스펜서 하나로 교체하는 경우 단순히 편의시설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폐기물과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이 제품 감소를 서비스 품질 저하로 받아들이는 대신 의도적인 환경정책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연구진은 또 기업이 모든 친환경 제품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부 친환경 요소는 유지하되, 불필요한 물품은 줄이고 그 환경적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확산되는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에도 시사점을 준다. 기업은 기존 제품을 줄이는 것보다 재생소재 제품, 친환경 굿즈, 재사용 가능 제품 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계속 생산하는 방식은 제품 한 개의 환경성은 개선할 수 있어도 전체 자원 소비량 자체를 줄이지 못할 수 있다.
연구진은 지속가능한 생산만으로 과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별 제품을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애초에 그 제품이 필요한지,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당국과 환경단체에도 비슷한 과제가 제시됐다. 자원순환 정책에서 재활용이나 친환경 제품 소비뿐 아니라 폐기물 예방과 제품 수 자체의 감소, 이른바 ‘적게 쓰되 더 잘 쓰는(less but better)’ 접근법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쿠티 박사는 “우리는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을 개선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러나 불필요한 제품을 없앤다고 해서 반드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더 효율적인 서비스와 더 나은 환경적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순환경제와 지속가능한 소비 정책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소비자에게 친환경 제품을 더 많이 제공하는 것과 실제 자원 사용량과 폐기물을 줄이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도 얼마나 많은 친환경 제품을 제공하느냐에서 얼마나 불필요한 소비와 생산 자체를 줄였느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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