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이후 배출량, 2025년 유럽 폭염 0.34도 높였다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9-27 22:21:01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2015년 파리기후협정 채택 이후 세계가 배출한 온실가스만으로도 최근 유럽 폭염의 강도가 뚜렷하게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전체 배출량이 아니라 최근 10년간 발생한 비교적 적은 배출량의 영향을 개별 폭염에서 분리해 추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도어지속가능성대학 연구진은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세계 기후모델, 실제 기상 관측자료를 결합해 2015년 이후 배출량이 유럽의 최근 폭염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지구물리학회(AGU)가 발간하는 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2015년 이후 배출량이 2025년 6월 유럽 폭염의 지역 평균기온을 높였을 가능성을 99% 이상으로 추정했다. 배출량이 2015년 수준에서 더 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동일한 대기 흐름 아래에서 폭염의 일평균기온은 중간 추정치 기준 약 0.34℃ 낮았을 것으로 분석됐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폭염과 가뭄 등 극한현상을 악화시켰는지를 분석하는 연구는 ‘극한기상 귀속 연구’로 불린다. 그러나 전체 온난화가 아닌 최근 몇 년간 배출량처럼 작은 부분의 영향을 특정 기상현상에서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폭염의 강도가 온실가스뿐 아니라 고기압의 위치와 지속시간, 토양수분, 해수면온도 등 자연적인 변동에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신호와 잡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지 생성 등에 사용되는 확산모델을 기후 분석에 적용했다. 10개 세계 기후모델이 1850년부터 2100년까지 모의한 기상자료를 이용해 AI를 훈련하고, 해면기압과 토양수분, 대기 상층의 지위고도, 누적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유럽의 일평균 지표면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학습시켰다.

이어 유럽에서 2016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가장 강했던 폭염 당시의 실제 기상 조건을 AI에 입력했다. 각 폭염에 대해 실제 배출량이 반영된 상황과 누적 배출량을 2015년 수준으로 되돌린 가상 상황에서 예상되는 기온을 각각 생성해 비교했다.

이는 폭염을 일으킨 고기압과 대기 흐름 등 대규모 기상 조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파리협정 이후 배출 증가분만 제거했을 때 기온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계산한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가장 더웠던 주에는 2015년 이후 배출량이 지역 평균기온을 높였을 가능성이 모두 95%를 넘었다. 특히 2025년 6월 폭염은 두 가상 상황의 예상 기온 범위가 거의 겹치지 않아 최근 배출량의 영향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났다.

섭씨 0.34도의 차이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미 극한 수준에 도달한 폭염에서는 사망과 전력수요, 노동생산성, 농업 피해 등을 크게 늘릴 수 있다. 기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건강과 경제적 피해가 온도에 비례해 완만하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2025년 6월 유럽에서는 서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고온이 이어지며 수천명의 열 관련 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유럽은 2025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을 경험했으며 이 기록은 2026년 다시 경신됐다.

파리협정 채택 이후 10년 동안 화석연료 연소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산업화 이후 누적 화석연료 배출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탈탄소화가 빠르게 진행되더라도 순배출 제로에 도달하기 전까지 누적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폭염이 앞으로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공동저자인 노아 디펜보(Noah Diffenbaugh) 스탠퍼드대 교수는 “가장 낙관적인 감축 일정에서도 앞으로 배출될 양은 파리협정 이후 지난 10년간의 배출량보다 많을 것”이라며 “최근 경험한 극심한 폭염이 향후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비교적 적은 배출 증가분도 특정 폭염의 강도와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를 국가나 화석연료 생산기업의 배출량과 연결하려는 논의에도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가 개별 국가나 기업의 법적 책임을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분석은 특정 배출 주체를 구분하지 않고 2015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누적 배출량을 하나로 묶어 평가했다. 폭염에 따른 사망이나 경제적 손실 가운데 어느 정도가 특정 주체의 배출에서 비롯됐는지도 계산하지 않았다.

방법론상의 한계도 있다. 분석은 약 2.81도 격자의 비교적 낮은 공간 해상도를 사용했으며, 유럽 전체의 지역 평균에서는 강한 신호가 나타났지만 개별 지역 단위에서 통계적으로 뚜렷한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또한 누적 화석연료 이산화탄소를 핵심 입력값으로 사용하되, 기후모델에서 이에 연동된 다른 온실가스와 에어로졸의 효과까지 결합된 결과를 추정했다.

따라서 연구 결과는 2015년 이후 배출량이 유럽 폭염을 강화했다는 사건 단위의 기후 귀속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어느 기업이 얼마의 피해를 발생시켰는지를 판단하려면 배출 주체별 기여도와 지역별 기온 변화, 실제 인명·경제 피해를 연결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

 

[ⓒ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