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22 23:03:58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염습지가 극심한 폭풍 해일에서도 지반과 식생을 상당 부분 유지하며 해안 침수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대규모 실험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염습지를 전통적인 제방이나 방조제의 대체재라기보다 이들과 결합해 파랑 에너지를 줄이는 자연기반 해안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트벤테대학교와 델타레스, 바게닝겐대학교 및 연구소, 네덜란드왕립해양연구소(NIOZ), 델프트공과대학교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네덜란드 프리지안 와덴해 연안의 페제멜라넨 자연보호구역에서 온전한 염습지 일부를 떼어내 델타레스의 대형 실험시설인 델타 플룸(Delta Flume)으로 옮겼다. 관련 연구는 네이처지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300㎡가 넘는 규모의 염습지를 실험시설에 조성한 뒤 점차 강도를 높여 최대 약 2m의 파고를 발생시켰다. 염습지는 총 29시간 동안 파랑에 노출됐다. 실험 결과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염습지 표면의 안정성이었다. 21시간 동안 파랑에 노출된 뒤에도 염습지 지표면은 평균 약 7㎜ 낮아지는 데 그쳤다. 최대 2m 높이의 파도가 반복적으로 밀려왔음에도 토양 표면이 사실상 유지된 셈이다.
이는 해안 방어 측면에서 중요한 결과다. 염습지 자체의 높은 지반은 파도가 제방이나 방조제에 도달하기 전에 에너지를 일부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식생이 추가적인 파랑 감쇠 효과를 제공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파고가 75㎝ 수준일 때 식생은 파랑 에너지를 추가로 약 6~22% 줄였다. 파고가 2m까지 높아지면 식생의 추가 감쇠 효과는 최대 약 6%로 낮아졌다.
즉 파도가 커질수록 식물 자체의 감쇠 효과는 줄었지만 염습지의 지형과 퇴적층은 여전히 해안방어 기능을 유지했다.
식물의 생존력도 예상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전 세계 여러 염습지 환경을 대표하는 식물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가장 극심한 파랑 조건에서도 식물 물질의 손실이 평균 약 30%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극한 조건 이후에도 최소 3분의 1 이상의 식생이 남아 있었다. 이는 겨울철 한 차례의 폭풍 이후 염습지의 기능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강한 폭풍에도 일정 수준의 해안방어 기능을 이어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전 세계 염습지와 폭풍 해일 자료와도 비교했다. 분석 결과 염습지 위를 통과하는 파도가 약 1m 이하인 해안에서는 식생의 역할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식생에 의한 추가 파랑 감쇠 효과는 일반적으로 10%를 넘었고 일부 조건에서는 최대 50%까지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대로 파도가 매우 높아질수록 식생 자체가 제공하는 추가 감쇠 효과는 감소했다. 그러나 염습지 지반의 높이와 거칠기, 퇴적층 등이 여전히 파랑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전체적인 해안방어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식물의 줄기 강도나 유연성 같은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큰 폭풍이 발생했을 때 식생이 얼마나 손실되는지 예측하는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제 폭풍 상황에서 염습지가 어느 정도까지 제방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결과는 염습지를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으로 활용하는 해안방어 전략에도 근거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염습지가 기존 제방이나 방조제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들과 결합할 경우 제방에 도달하는 파도의 에너지를 낮춰 구조물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이러한 염습지의 침식 저항성과 파랑 감쇠 효과를 제방 설계에 반영하면서 비용 절감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 북서부 수자원 당국인 웨터스킵 프라이슬란 측은 쾨훌-라우저머 제방 보강사업에서 기존 염습지의 해안방어 효과를 반영한 결과 일부 제방 구간을 완전히 교체하지 않거나 구조 강도를 낮출 수 있어 수백만 유로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제방 안전성을 평가할 때 염습지의 효과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극심한 폭풍이 발생했을 때 습지 자체가 침식되거나 식생이 사라져 방어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염습지 보호의 중요성은 해안방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염습지는 조류와 어류, 무척추동물 등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퇴적물과 식생에 탄소를 저장하는 대표적인 ‘블루카본’ 생태계다. 또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경우 지표면이 높아지면서 일정 수준까지 해수면 상승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능력에도 한계는 있다. 퇴적물 공급이 부족하거나 바깥쪽 가장자리에서 침식이 계속될 경우 염습지는 육지 방향으로 후퇴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약 719㎢의 염습지가 사라졌다. 따라서 기존 염습지를 보호하고 훼손된 지역을 복원하는 것이 해안 안전과 생물다양성, 탄소 저장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과 폭풍 해일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콘크리트 제방만 높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염습지와 제방을 하나의 방어체계로 관리하는 접근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실험은 염습지가 단순히 평상시 파도를 약화시키는 생태계가 아니라 극한의 폭풍 상황에서도 상당한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실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해안방어 정책에서 ‘자연을 보호하는 것’과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별개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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