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사회의 풍류 담은 '단원 김홍도'의 새로운 '풍속화첩' 공개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18-07-13 09: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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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는 조선시대 후기 화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고(故) 문일평(文一平) 선생은 단원을 가리켜 ‘그림의 신선’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조선 후기 화단사에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했다.

▲ 세상에 공개된 단원 김홍도 풍속화첩의 표지


이러한 가운데 최근 단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풍속화첩이 공개되어 화제다. 이 화첩의 표제는 ‘檀園 風俗畵帖(단원 풍속화첩)’으로 1890년대 한국에 나와 있던 프랑스인 Moniez 신부가 수집, 1912년 4월 22일 고국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이후 1997년 옥션에 나온 것을 일반인이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아 한국에서 20년간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다. 소장자는 그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다가, 한국문화사학회 종신회원인 이재준(前충북문화재 위원) 위원에게 특별공개한 후 그 진가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 화첩이 발견 된 후 학계에서는 ‘정말 단원 김홍도가 그린 화첩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학계는 현존하는 단원의 풍속화를 막연히 30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이를 직접 고증한 이재준 위원은 단원의 풍속화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화첩을 조사한 결과 제일 끝장에 ‘戊子 淸和 金弘道 寫(무자 청화 김홍도 사)’라는 묵기와 도인이 나타나 있다. 이 묵기는 현존하는 풍속화를 그린 시기를 아는데 중요한 기록이므로 간과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자년은 조선 영조 44년 1768년이며 단원이 23세 되는 해이다. 이 해는 단원이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원에 임명되어 몇 년이 지난 해 이며 열심히 그림을 공부하던 시기로, 단원은 이미 그림을 잘 그리는 화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즉,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되어 있던 단원풍속화의 그린 시기를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는 매우 큰 수확이다.”


“또한 이름 밑에 찍힌 圖印(도인)은 단원이 제일 숭배했던 당나라 시성 杜甫(두보)의 紫門(자문)이란 시에 나오는 한 구절 ‘杉淸延月華(삼청연월화)’이다. 왜 단원은 두보의 시구를 도장으로 만들어 이 그림에 찍은 것일까. 표암의 문하에서 시서 공부에도 게을리 않은 단원의 유아한 풍모를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成浹의 풍속화 7장과 같은 내용의 그림으로 비교되는 작품임이 밝혀졌다. 성협은 그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학계는 김홍도-김양기 이후 19세기 말에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협의 풍속화는 자세히 살펴본 결과 이번에 찾아진 풍속화를 보고 模寫한 것으로 보인다. 성협의 풍속화첩에는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 된 여러 점의 풍속화를 모사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림의 紙質(지질)이나 품격이 이번에 찾아진 풍속화에 비해 현저히 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화로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

이번에 발견 된 단원풍속화첩안의 그림은 조선 선비사회의 풍류, 서민들의 유희등을 담은 것으로 기왕에 보물 제 527호로 지정되어 있는 단원풍속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화첩의 그림들은 단원의 어린 시절과 20대의 삶을 담은 것으로 생각되어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환경미디어=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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