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폭우와 가뭄이 동시에...‘복구형 물관리’에서 ‘예방형 물안보’로

기후위기로 강수의 시공간 편차 확대와 하천·도시·농촌 재난 복합화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8-13 11: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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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강수량 양상도 편차를 보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산사태를 일으키고 도로와 주택을 덮쳤다. 다른 한쪽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제한급수까지 걱정해야 했다. 지난해 충남 서산과 경남 산청·합천, 경북 청도 등에서는 극한호우로 피해가 발생한 반면, 강원 영동지역은 여름 강수량이 평년의 34% 수준에 머물며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물은 많은데 쓸 수 있는 물은 부족하다

▲제공=국회물포럼 
물 부족은 생활의 불편을 넘어 국가 산업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국회물포럼 제35차 토론회 ‘2030 미래 물관리, 무엇을 해야 하나’에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러한 변화였다. 이제 물관리는 얼마나 많은 물을 확보하느냐의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필요한 시기와 지역에 적정한 품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재난 발생 전 위험을 낮추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로 세계 평균 약 900㎜보다 많다. 표면적인 강수량만 보면 물이 부족한 나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높은 인구밀도를 고려하면 1인당 연간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약 1,450톤으로 세계 평균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수량도 여름철에 집중되고 지역별 편차가 커 실제 이용 가능한 물은 제한적이다.
 

문제는 단순한 총량 부족보다 물이 내리는 시기와 필요한 장소가 일치하지 않는 데 있다. 최근에는 비가 내리는 날은 줄어드는 반면 한 번에 내리는 비의 양은 증가하고 있다. 집중호우가 발생한 지역의 하천과 도시 배수시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물이 몰리지만, 내린 물을 저장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불과 몇 달 뒤 같은 지역에서 가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기존의 물 공급체계가 댐과 하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취약성을 키운다. 국내 물 공급량 가운데 댐용수는 약 53%, 하천수는 약 35%로 두 수원이 전체 공급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특정 댐이나 하천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수원에 의존하는 지역 전체가 곧바로 물위기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다.
 

강릉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약 90%는 오봉저수지에 의존하고 있어 강수량이 부족하면 지역 전체의 물 공급이 빠르게 불안해진다. 보령과 완도, 제주를 비롯한 도서·해안·산간지역도 수원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다.

첨단산업 성장으로 달라진 물안보의 방정식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확대는 물 수급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하루 100만 톤 이상의 공업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약 110만 명이 거주하는 용인시 전체의 하루 생활용수 사용량인 50만∼60만 톤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토론에 함께한 사람들(제공=국회물포럼)

물 사용량뿐 아니라 수질도 중요하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웨이퍼 세척을 위해 극도로 불순물이 적은 초순수를 사용한다. 충분한 양의 원수를 확보하더라도 수질이 적합하지 않으면 막대한 정수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산업단지 입지를 결정할 때 전력과 함께 물이 핵심 조건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나 산업용수를 더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댐을 계속 건설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신규 댐 후보지가 많지 않은 데다 건설비가 상승하고 있으며, 댐이 들어서는 상류지역과 물을 사용하는 대도시·산업지역 간의 갈등도 커질 수 있다. 수원지역의 규제와 희생을 전제로 수도권과 산업지역이 혜택을 보는 기존 방식은 지역균형발전의 관점에서도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의 물안보는 하나의 대규모 수원에 의존하기보다 댐과 하천, 하수처리수, 빗물, 지하수, 농업용수와 해수담수화를 지역 여건에 맞게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수원 다각화’는 단순히 물의 양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특정 수원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 공급체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일종의 위험 분산 전략이다.

하수처리수, 버리는 물에서 전략적 수자원으로

수원 다각화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하수처리수 재이용이 꼽힌다. 하수는 가뭄과 홍수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도시에서 일정한 양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댐 저수율이나 하천 유량이 급격히 낮아져도 하수처리장 유입량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우리나라의 하수도 보급률은 약 95%에 이르지만 하수처리수 재이용률은 약 14%에 머물고 있다. 재이용되는 물도 대부분 하천유지용수나 하수처리장 내부 세척용수로 사용되며, 산업용수와 농업용수로 활용되는 비율은 낮다. 따라서 하수처리수 재이용률을 30%까지 높이면 연간 약 13억 톤의 용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로 하는 연간 용수량의 약 세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재이용률을 더 높이고 산업단지와 하수처리장을 연결하는 전용 관로를 구축한다면 신규 수자원 개발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것.
 

싱가포르는 하수처리수의 약 40%를 고도처리한 ‘뉴워터’로 생산해 산업용수와 간접 음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오렌지카운티는 하루 약 50만 톤의 하수처리수를 고도 정화한 뒤 지하수층에 주입하거나 침투시켜 수자원으로 저장·활용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물 공급과 수질, 홍수·가뭄, 도시계획, 산림과 농업, 산업입지, 에너지정책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다뤄야 한다(AI 생성형 이미지) 

다만 재이용 확대를 시설 건설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일반 공업용수보다 높은 생산비용, 공급관로 부족, 용도별 수질기준 미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축수 문제 등이 걸림돌로 남아 있다. 하수처리수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과 안전성 우려도 해결해야 한다.
 

맹승규 한국환경공학회 회장은 물 재이용 정책이 성공하려면 수질 안전성과 실시간 모니터링, 유해성 기반 관리,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이용수의 공급량을 늘리는 것에 앞서 국민과 산업계가 수질을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기준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도시 유출량, 과거 기준으로 막기 어렵다

물 공급체계의 전환과 함께 재난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후변화로 강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도시의 불투수면적이 확대되면서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과거보다 훨씬 많은 빗물이 짧은 시간에 하천과 하수관로로 유입되고 있다.
 

강부식 한국수자원학회 부회장에 따르면 도시의 불투수면적은 1970년대보다 약 세 배 증가했으며, 강수량 증가와 불투수면 확대가 겹치면서 도시 유출량은 네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2010년 광화문 침수와 2022년 강남역 침수는 좁은 지역에 집중된 폭우와 도시 지형, 불투수면, 배수시설의 한계가 결합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현재 물재해 대응체계가 여전히 재난 발생 후 복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침수나 산사태가 발생한 뒤 특별재난지역을 지정하고 복구비를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반복되는 피해를 막기 어렵다. 하천 정비, 우수관로 개선, 배수펌프장과 저류시설 설치도 필요하지만 개별 시설 중심의 대책만으로는 상류에서 하류, 하천에서 도시와 지하공간으로 이어지는 복합재난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과거의 강우 통계에 기초한 설계기준도 재검토해야 한다. 기후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는 ‘정상성’을 전제로 산정한 확률강우량과 홍수량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한호우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미래 기후 시나리오와 국지성 강우, 하천 범람과 도시 침수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을 고려해 설계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은 많은데 책임은 불분명한 ‘분절 행정’

우리나라의 물재해 관련 법률과 계획은 적지 않다. 물관리기본법과 하천법, 하수도법, 자연재해대책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여러 법률이 하천 범람과 도시 침수, 지하공간 안전을 나눠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법이 많다고 해서 관리가 촘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처별 업무가 중복되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통합적인 투자와 유지관리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지역이 도시침수 취약지역,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 등 서로 다른 명칭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지정 기준과 사업 우선순위, 재정지원 방식, 유지관리 주체가 달라 현장에서는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천과 도시, 농촌의 물은 연결돼 있지만 행정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산림청, 농림축산식품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하천도 산지의 세천과 소하천, 지방하천, 국가하천으로 관리 주체가 분절돼 있다.
 

홍수 예측정보가 생산되는 것만으로는 재난을 막을 수 없다. 어느 수위에서 도로를 통제하고, 지하차도와 반지하주택 주민을 언제 대피시키며,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와 장애인을 누가 지원할 것인지까지 사전에 정해져야 한다.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행동을 유도하는 재난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농업용 저수지, ‘남는 물’로만 봐서는 안 돼
농업용수는 국내 물 이용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실제 사용량과 회귀수량, 저수지별 공급 가능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국에 약 1만7,000개의 농업용 저수지가 있지만 규모가 작고 분산돼 있으며, 50년 이상 된 노후 저수지가 70%를 넘는다.
 

농업용 저수지의 물을 생활·공업용수로 전환하자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지만 물리적인 연결 관로와 수질기준, 수리권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농업용 저수지는 가뭄에 강한 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 저수지 가운데 10년 빈도의 가뭄을 견딜 수 있는 시설은 약 15∼20%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따라서 농업용수를 단순히 남는 물로 보고 산업용수로 가져오는 접근은 갈등을 키울 수 있다. 극심한 가뭄 때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산업용수 가운데 어느 부문의 공급을 먼저 줄일 것인지, 반도체와 같은 국가전략산업의 용수는 어떤 원칙으로 배분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유승환 한국농공학회 부회장은 농업용수 관리의 목표를 농민의 삶의 질 향상과 농어촌 재해 예방에 두고,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설계와 안전진단 전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 기반 홍수 예·경보와 배수장 자동운영, 광역 관개지구의 용수공급 의사결정 시스템도 현장 적용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저수율과 유량, 강우, 취수량과 실제 사용량을 측정하는 기초 데이터가 부정확하면 AI의 예측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디지털 전환에 앞서 계측시설을 확대하고 농업용수의 실제 이용량과 회귀수량, 지하수와 하천수의 연계 관계를 투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물위기 관리, 시설이 아니라 국가안전 체계의 문제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댐이나 관로 몇 곳을 더 건설하는 토목사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물 공급과 수질, 홍수·가뭄, 도시계획, 산림과 농업, 산업입지, 에너지정책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다뤄야 한다. 

 


첫째, 댐과 하천 중심의 수원을 하수처리수와 지하수, 빗물, 농업용수, 해수담수화 등으로 다각화해야 한다. 둘째, 행정구역이 아닌 유역 단위로 위험을 분석하고 상류와 하류의 대책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 셋째, 과거 통계가 아니라 미래 기후 시나리오와 복합재난을 반영해 하천과 도시·농업 기반시설의 설계기준을 높여야 한다. 넷째, 부처별로 중복된 법률과 계획의 정합성을 높이고 예측정보가 주민 대피와 시설 통제로 곧바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재정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해 취약한 지역일수록 대응 역량도 취약해지는 이중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의 배분과 재이용을 둘러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주민과 농민, 산업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홍수 뒤에 제방을 높이고 가뭄 뒤에 관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는 반복되는 물재난을 따라잡을 수 없다. 앞으로의 물위기 관리는 재난이 발생한 뒤 피해를 수습하는 행정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위험이 커지고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물과 재원을 선제적으로 배분하는 국가안전 전략이 돼야 한다.
 

물은 많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장소로 보낼 수 있어야 하며, 넘칠 때는 피해를 줄이고 부족할 때는 사회적 갈등 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물안보이자 재난 대응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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