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별도의 강력한 감축 조치 없이 현재의 생산·소비 추세가 이어지면 세계 석유화학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50년까지 약 50%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생산 효율 향상과 공정 전기화, 탄소 포집·저장(CCS) 등 공급 측 대책만으로는 넷제로 달성이 어려워 석유화학제품의 총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영국 셰필드대학교 판란 멍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전 세계 3만7000여 개 석유화학 생산시설과 공정 설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시설·제품·공정·국가별로 추정해 지도화했다. 연구 결과는 ‘Nature Sustainability’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세계 석유화학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2023년 약 20억 톤(±8억 톤)의 이산화탄소 환산량(CO₂e)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기존 추세가 계속되는 ‘통상적 사업’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 배출량이 약 30억 톤(±12억 톤)으로 증가한다. 기준연도보다 약 50% 늘어나는 규모다.
이 수치는 개별 공장의 배출량을 모두 직접 측정한 결과가 아니다. 연구진이 시설별 생산능력과 제품 종류, 사용 원료와 에너지, 생산공정 등의 자료를 결합해 산출한 모델 추정치다. 따라서 개별 시설의 실제 가동률이나 기술 수준, 전력 구성에 따라 배출량은 달라질 수 있으며 연구진도 비교적 큰 불확실성 범위를 제시했다.
연구 결과 석유화학산업의 배출량은 일부 대형 시설에 집중돼 있었다. 분석 대상 가운데 배출량이 많은 상위 10%의 시설이 전체 배출량의 53%를 차지했다.
이는 모든 공장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배출량이 큰 시설과 공정을 우선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고배출 시설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공정을 전기화하거나 원료와 생산방식을 바꾸는 대책을 적용하면 상대적으로 큰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한 주요 기초 화학제품 가운데 배출량이 가장 큰 품목은 에틸렌과 암모니아였다. 에틸렌은 폴리에틸렌을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과 포장재, 합성소재 생산의 핵심 원료다. 암모니아는 주로 질소비료 생산에 사용되며 현재는 대부분 천연가스나 석탄 등 화석연료를 이용해 생산한다.
석유화학산업은 플라스틱뿐 아니라 비료와 의약품, 합성섬유, 세제 등 현대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의 원료를 공급한다. 공정이 복잡하고 제품에 탄소 원료가 포함되기 때문에 발전이나 수송 부문보다 탈탄소화가 어렵다.
연구진은 에너지 효율 개선, 공정 전기화, 저탄소 전력 확대, 바이오 기반 원료 전환, CCS 및 생산공정 변경 등의 조합을 검토했다. 그러나 전력망이 큰 폭으로 탈탄소화되고 CCS를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에 관련 설비가 설치되며 바이오 원료도 충분히 공급된다는 매우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2050년 넷제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전기화 역시 사용되는 전력이 화석연료 발전에서 공급된다면 배출량을 공장 밖 발전 부문으로 옮기는 데 그칠 수 있다. 바이오 원료는 토지와 물 사용, 생물다양성 및 다른 산업과의 원료 경쟁 문제가 있고, CCS도 모든 공정 배출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멍 박사는 “석유화학산업의 배출량은 이미 막대하지만, 통상적 사업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까지 50% 증가할 경로에 놓여 있다”며 “산업의 복잡성과 현대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하면 하나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당한 수준의 전력망 탈탄소화와 적용 가능한 CCS의 완전한 보급, 충분한 바이오 기반 원료를 결합한 극도로 낙관적인 시나리오조차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보다 청정한 생산과 함께 석유화학제품 수요 감축이 해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석유화학산업의 감축정책이 단순히 공장 효율을 높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품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면 단위 생산량당 배출량을 낮추더라도 산업 전체의 배출량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과 과잉 포장을 줄이고 제품의 재사용·수리·재활용을 확대하는 등 신규 석유화학 원료의 투입량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다만 필수적인 석유화학제품까지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제품별 필요성과 대체 가능성, 환경 영향을 고려해 수요 감축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번 세계 배출지도가 고배출 시설과 공정을 찾아 집중적으로 개선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생산공정의 청정화만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상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술혁신과 순환경제, 제품 수요 관리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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