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 보조금만 늘린다고 빨라질까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11 22: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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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각국이 내연기관차 퇴출과 전기차 보급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단순히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인 수송부문 탈탄소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내연기관차가 실제 도로에서 퇴출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유류세 수입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전기차 지원정책을 장기적인 차량 교체주기와 세제개편까지 포함해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폴 빈센트 존슨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대학교 다비드 졸탄 사보 연구진은 전기차(EV) 시장의 최적 인센티브 정책을 분석한 연구를 학술지 ‘Energy Policy’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영국을 주요 사례로 하고 프랑스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2050년까지 전기차 구매 지원정책의 효과와 재정 부담, 내연기관차(ICE) 감소 속도를 동적 모델을 통해 분석했다.

연구의 출발점은 자동차 시장의 관성이다. 신규 판매 차량이 빠르게 전기차로 바뀌더라도 이미 운행 중인 수천만대의 내연기관차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승용차는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사용되기 때문에 신차 판매구조의 변화가 전체 차량 보유구조 변화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정책을 너무 늦게 시작하면 기후목표 시점이 다가왔을 때 훨씬 큰 비용을 투입해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2021~2024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이탈리아,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인도, 미국 등 14개국의 전기차 판매비중과 차량가격, 구매 인센티브, 충전 인프라 자료를 이용해 전기차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추정했다. 2024년 기준 전기차 판매비중은 노르웨이가 92%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고 네덜란드와 중국은 각각 48%, 영국은 28%였다. 반면 미국은 10%, 브라질은 6.4%, 인도는 2.1%로 국가별 편차가 컸다.

분석 결과 차량 가격과 구매 인센티브, 충전 인프라가 모두 전기차 선택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차의 상대가격이 높을수록 보급률은 낮아지는 반면 구매 지원과 충전 인프라 확대는 보급 확대와 연관됐다. 연구진은 보조금 효과가 존재하지만 소비자가 가격 인센티브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재정을 투입했을 때 정책효과가 크게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연구가 특히 주목한 것은 전기차 정책의 시점이다. 연구진은 크게 두 가지 정책목표를 비교했다. 하나는 2050년과 같은 최종 목표 시점에 남아 있는 내연기관차를 최소화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매년 새롭게 판매되는 내연기관차를 줄이는 방식이다.

최종 시점의 내연기관차 보유량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우에는 정책 지원이 상대적으로 후반부에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목표연도에 내연기관차가 많이 남아 있을수록 정책적 비용이 커진다고 가정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목표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전기차 구매지원금을 집중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규 내연기관차 판매 자체에 지속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조기 개입이 유리했다. 내연기관차가 한 대 더 판매될 때마다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에 전기차 전환을 촉진할수록 이후의 누적비용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남아 있는 내연기관차 수를 줄이는 데는 최종 차량 보유량을 겨냥한 정책이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반면, 2025~2050년 누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는 신규 판매를 조기에 전환하는 정책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장기 목표를 적용할 경우 모델상 2050년 내연기관차 보유량을 정책 개입이 없을 때보다 약 3분의 2까지 줄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만큼 상당한 재정지출이 필요했다. 연구진은 따라서 내연기관차 퇴출목표와 전기차 지원정책을 별개로 운영하기보다는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를 장기적으로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전환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변수는 유류세였다. 내연기관차는 휘발유와 경유 소비를 통해 정부에 상당한 세수를 제공한다. 그러나 전기차 비중이 확대되면 이러한 세원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연구진은 정부가 전기차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내연기관차 감소로 유류세 수입까지 잃게 되는 일종의 재정적 잠금효과(fiscal lock-in)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모델에서는 유류세 수입을 정부 재정에 반영할 경우 동일한 조건에서도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 규모가 낮아졌다. 내연기관차를 빠르게 줄이는 것이 환경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거둘 수 있었던 유류세 수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지원정책과 교통세제 개편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내연기관 연료에 부과하던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주행거리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는 도로이용료나 혼잡통행료, 탄소배출량을 반영한 자동차세 등 다른 세원을 마련하면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왜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는 또 아무런 추가 개입이 없을 경우 영국에서는 2050년에도 약 1280만대의 내연기관차가 남을 것으로 추산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신차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증가한다고 해서 기존 내연기관차가 단기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기차 정책을 평가할 때 매년 전기차 판매비중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도로를 달리는 전체 차량 가운데 내연기관차가 얼마나 빠르게 감소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 결과의 수치를 실제 정책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연구진이 설정한 내연기관차 관련 비용은 실제 세율이나 벌금이 아니라 정부가 기후목표 달성 실패나 내연기관차 판매에 어느 정도의 정책적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모델상 금액으로 환산한 ‘그림자가격’에 가깝다. 따라서 특정 금액 이상의 부담금을 실제로 부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이번 연구의 핵심은 전기차 전환정책을 ‘얼마의 보조금을 지급할 것인가’라는 단일 문제로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차량 교체주기와 소비자의 가격 반응, 충전 인프라, 내연기관차 퇴출시점뿐 아니라 전기차 확산으로 줄어드는 유류세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연구진은 장기적인 차량 전환 목표와 단기 구매 인센티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조정하는 정책설계가 수송부문 탈탄소화의 비용과 효과를 좌우할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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