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환경인>45년 구두 수선 박경익 장인

신발 멀쩡한데 그냥 버리는 젊은이들 보면 안타까워
문광주 기자
liebegott@naver.com | 2016-01-08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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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 집 선반에 굽이 헤진 신발들이 즐비하다. 한 해를 숨 가쁘게 달려온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온 것들이다.

구두 뒷굽은 신발주인의 체중만 담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마모된 상태는 주인의 직업, 체형, 교통수단, 어느 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다니는지, 범인을 찾아내는 데 신발의 족적은 신발의 구매시기와 장소까지 알려준다. 이런 정보만이 중요할까?

이른 새벽을 여는 수산시장에서 보는 긴 물장화, 건설현장의 안전화. 신발은 하루하루 생계를 일궈야 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짊어지고 있기도 하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마모되는 신발 뒷굽. 45년 동안 한 곳에서 구두 뒷굽을 수선하는 박경익 할아버지(87세)를 통해 재활용의 의미를 찾아본다.

 

△박경익 구두 수선 장인

기술 갖고 있어 이 날 이 때까지 자식 신세 안지고 잘 살고 있지…  

 

“여기서 못해.” 

“......” 

“이것은 샀던 곳에 가서 색을 다시 내달라고 해야 돼.”  “.....”
“여기서 손보고 만원이여, 얼룩얼룩한 데는 발라도 이 색이 안 나오니까....”


구두 앞 코가 엄지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다. 구두를 왼손에 잡은 수선집 주인의 말은 단호했다.

 

남성용 구두를 맡기는 중년의 아주머니는 무심히 듣고만 있다. 짧은 흰머리 수선집 주인은 황갈색 구두코가 검게 변한 것을 원래 색깔로 만들 수 없다고 거듭 강조를 한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점심시간을 30여분 남겨 놓은 때였다.
하얀 털모자를 쓴 손님은 주인이 제시한 금액에 수긍하고 이틀 후에 찾아오겠다며 출입문을 밀쳤다.


아침 8시30분에 문을 연다는 주인아저씨(손님들은 모두 아저씨라고 부른다)는 올해가 미수(88세)다. 그는 조금 전 맡겨진 구두를 왼손에 잡았다. 신발은 앞부분만 아니라 뒷굽도 심하게 닳아진 상태였다.



고객이 수선을 맡긴 구두의 상태를 확인하는 박경익 장인

요즘 젊은이들 신발 뒷 굽도 안 갈고 버려

1남 2녀를 둔 박경익 아저씨는 요즘 경기가 안 좋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새 신발을 사면 뒷굽도 안 갈고 버려, 고쳐 신으면 될 텐데 말이여, 옛날에는 젊어도 고쳐 신고 다녔는데…” 연거푸 되뇌인다.


그가 앉은 자리 옆으로 수선을 기다리는 가방도 수북하다. 혹시나 명품브랜드들만 수선을 맡기지 않을까 생각하며 들여다봤다. 아니다. 흔한 스포츠용 운동화, 가방들이다. 쓰던 물건을 고쳐 재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조금 닳은 구두를 뒤돌아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내어버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곳에 오는 생활용품은 대체적으로 주인의 손 때, 발 때가 충분히 묻어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신발과 구두는 헤진 부분만 고치면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래 신어서 몸에 익숙해진 것들이고, 작은 금액으로 수명을 연장해 사용하게 됨으로써 절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선을 맡길 터이다. 아나바다 운동이 한 창이던 때가 언제였던가? 왜 이런 사회적 구호는 일시적으로 외쳐지고 1회용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인가?


45년을 수선일로 이곳을 지켜온 박 할아버지는 과도하게 소비지향적인 현대인들에게는 불필요한 동네 할아버지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소비를 과시하는 사회에서, 나만의 이익이 최우선이 되는 삶의 행태는 모두에게 아픔이다. 환경으로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22세 때 평양을 떠나 6.25 의용군으로 포로수용소까지 경험한 박 할아버지는 작업복 양 팔꿈치 밑을 가죽으로 덧기워서 입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거예요?” 라는 질문에 “근력이 다할 때까지 하려고, 사람이 살려면 돈 아니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 대학을 나와 기업에 들어가도 금방 나와서 할 일이 없는 사람도 많고. 주위 사람들이 나더러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 이 나이 먹도록 자식들에게 도움 받지 않고 살고 있으니까.”

 

 

 

45년동안 구두수선만으로 인고의 세월을 지켜온 박경익 장인의

손은 보통사람보다 다르다.

45년간 오직 한 길…손가락 남보다 두 배 굵어

그는 서울 어느 교회의 원로장로라고 했다. 그의 머리맡에는 ‘여기에 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하는 액자가 걸려 있다. 소설 ‘백년보다 긴하루’에 나오는 주인공 까잔갑은 평생을 하루에 두 번 지나가는 시골 역사를 혼자 지키며 살았다. 그가 선로를 바꿔주지 않으면 기차가 제대로 갈 수가 없는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한 곳에서 오로지 평생을 자기 직업에 매진하며 살아온 박경익 할아버지는, 까잔갑 처럼 이 세상이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행위로 지탱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두를 수선하는 미미한 손놀림은 재화를 재사용하게 하는 값진 행위이다. 대화를 마칠 무렵 또 한명의 손님이 문을 열고 반부츠를 맡긴다. “여기 언제부터 찾아 오셨어요” 하고 묻자  “오래 됐어요. 아저씨 안계시면 큰 일이예요…” 하며 떠났다.


박 아저씨는 잠시 창 밖 불광초등학교 교정을 응시하더니 다시 조각칼을 손에 쥐었다. 그의 손가락은 성인 두 개 굵기다. 오랜 작업으로 정상인보다 30도 이상 휘어진 양손의 집게손가락에는 지문이 없다. 손톱도 기본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손에 잡힌 구두 한 짝이 오른손에 쥐어진 연장에 의해 옛 때를 벗기 시작한다. 새해에 주인에게 돌아갈 이 수선된 신발은 새벽을 박차고 일터로 향하는 데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지속 되는 것이다. 말만으로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위정자들과는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는 박경익 구두수선집 아저씨. 그는 우리가 찾는 참 환경인이다.

[환경미디어 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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