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하수도②

19세기 프랑스 파리 하수도에 대하여
글. (주)고비 호 부회장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3-03 16: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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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현재의 진보>
“오늘날 하수도는 깨끗하고, 시원하고, 똑바르게 정리되었다. 현재의 하수도는 아름다운 하수도다.”


“시궁창에는 더 이상 원시적인 사나움은 아무것도 없다. 빗물은 옛날엔 하수도를 더럽혔지만, 현재는 하수도를 씻어준다. 그렇지만 너무 믿지는 마라. 독기(毒氣)가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다.------수상쩍은 희미한 냄새를 발산한다.”


“파리의 하수도가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진보 이상이다. 그것은 변모다. 옛날의 하수도와 현재의 하수도 사이에는 하나의 혁명이 있다. 누가 이 혁명을 행했는가? 모두가 잊고 있으나 내가 그 이름을 말한 사람, 브륀조다.”

제6장 <미래의 진보>
“하수도는 땅속에서 수천의 촉각을 가지고 있는 어두운 산호층 같은 것이어서 지상에서 도시가 커가는 것과 동시에 지하에서 커 간다. 도시가 거리를 하나 뚫을 때마다 하수도는 팔을 하나 뻗친다.”
 

“1806년 파리의 하수도는 아직 1663년 5월에 확인된 숫자와 거의 같은 수에 머물러 있었는데 1만384미터였다. 브륀조 후에 1832년 1월1일 현재 그것은 4만 3000미터였다. 그때부터 매년 8000 내지 1만까지의 하수도가 건설되었다.”
 

“공중위생의 중대한 문제가 파리의 하수도라는 그 막중한 문제와 관련되고 있다.”


“파리는 두 널따란 층, 물의 층과 공기의 층 사이에 있다. 물의 층은 지하의 꽤 큰 깊이에 숨겨져 있지만, 이미 두 번의 굴착으로 탐색 되었는데 석회와 쥐라기 층의 석회암 사이에 위치한 사암층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이 물의 층은 건강에 좋은데 그것은 먼저 하늘에서 오고 다음에 땅에서 온다.”


“공기의 층은 건강에 해로운데 그것은 하수도에서 온다. 시궁창의 모든 장기(瘴氣)가 도시의 호흡에 섞여 있다. 그래서 그 나쁜 냄새가 난다.”
 

“일정한 때가 지나면 진보의 도움으로 기계장치들이 완성되고 광명이 이루어져 사람들은 공기층을 정화하는 데 물의 층을 사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수도를 씻는데 물의 층을 이용할 것이다. 하수도 씻기란 말로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 진흙탕을 토지에 반환하는 것임을 사람들은 안다. 퇴비를 땅에 돌려주고 비료를 밭에 돌려주는 것.”

장발장이 도피한 하수도 속의 이동 경로
1832년 파리 6월 봉기는 군주제 폐지를 기치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이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운 민중봉기였다. 장발장은 진압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6월 봉기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그는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하수도로 피신한다.

위고는 하수도 내부의 상태와 도피 경로를 지명을 붙여 설명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집필하면서 파리 하수도에 대한 관련 자료의 탐구와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설인데도 논문처럼 자신의 의견과 비판을 자세하고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다. 레 미제라블이 집필된 시기의 파리 하수도는 아직 개선되지 않고 정비 중인 하수도였다.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도피한 파리 하수도 속의 경로를 따라가 보면 초기에는 폭이 좁지만 걸을 수 있는 구간으로 건조하여 비교적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초기 구간을 지나 물이 점점 고이기 시작하는 중류 지점에 진입해서는 진흙과 오물로 허리까지 잠길 정도로 진흙과 오물 수렁이어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정도였다. 

 

하류로 진입하자 벽돌 아치형 천정의 대하수로로 물이 차올라 생명이 위험할 정도였다. 장발장은 자연 경사를 따라 센강 쪽으로 밀리듯 전진하여 물이 깊고 흐름이 강한 센강 방류구(출구)에 이른다. 미궁 같은 암흑 속을 빠져나와 바깥의 빛이 보이는 지점까지 당도하자 쇠 격자가 매립되어 있었다. 망연자실한 장발장은 탈옥하여 하수도에 숨어있던 테나르디에와 조우하고 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 당시 센강 하수도 방류구는 범죄자 불량배 도망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19세기 파리의 하수도 사정

▲ 한때 하수용 홈이 남아있는 파리 거리

19세기 파리의 하수도 상황은 근대적 하수도와는 거리가 멀고 비위생적인 상황에서 오스만(Baron Haussmann)의 파리 대개조 사업의 추진으로 근대적 하수도 시스템으로 극적으로 개선된 변혁의 시대였다.

 

세기 전반의 상황(오스만 이전)
중세의 파리는 오물과 냄새로 뒤덮인 불결하고 위생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사람들은 위생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도로에 내다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물 조심”이라고 큰소리로 외친 후 거리낌 없이 창문에서 분뇨와 오물를 내다 버리고 있었다.


파리에 하수도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374년으로 하수도라 해도 기존의 자연하천에 덮개를 설치한 간단한 것이었다. 1605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암거식(暗渠式) 하수도가 설치되었으나 종말처리는 정비되지 않았다. 파리 시민들은 하수도에 쓰레기를 마구 버려 하수도가 막히고 거리 전체가 악취로 뒤덮인 상황이었다. 1740 년경에는 지하에 아치형(egg-shaped) 하수도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도피한 하수도의 형태이다.

1805년 이런 파리의 하수도를 스스로 조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소설 제5부 제2편 제3장(브륀조)에서 위고가 특별히 하수도의 혁명을 이루었다고 상찬한 브륀조(Pierre Emmanuel Bruneseau(1766-1819)) 다. 그는 1805년부터 1812년까지 7년간에 걸쳐 파리 하수도를 조사하면서 나폴레옹시대 초기의 파리 하수도를 전면조사 지도화한 최초의 엔지니어다. 당시 파리 하수도는 중세적 구조와 자연하천 기반의 복잡한 미로였으나 하수도를 직접 탐험하여 측량하고 정비계획안을 작성하여 현대 파리 하수도 체계의 기초를 닦은 엔지니어라 할 수 있지만 근대적인 하수도를 완성한 것은 아니었고 파리의 하수도가 금일의 상태로 진화한 것은 콜레라의 대유행에서 비롯되었다.

파리의 콜레라 대 유행
19세기 중반까지 파리는 인구 급증과 함께 비좁고 구불구불한 거리,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매우 비위생적인 도시였다. 하수 시스템은 미비했고, 오수는 종종 거리로 넘쳐나거나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센강을 오염시켰다.

1832년 처음으로 콜레라가 파리에서 발생한 후 수년에 걸쳐 단속적으로 발생했다. 파리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832년에 18,402명, 49년에 19,000명이었고 그 이후에도 사망자 수는 감소했으나 콜레라는 계속 유행했다. 당시에는 질병이 "나쁜 공기"로 인해 전염된다는 미아즈마 이론에 대한 믿음이 고대부터 19세기까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도시 지도자들은 환기를 개선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데 주력했다. 어찌 되었건 콜레라 팬데믹은 파리의 열악한 위생 환경을 드러냈고, 이는 궁극적으로 도시 재정비와 현대적인 하수도 건설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파리의 도로는 중앙부를 낮게 해서 생활 하수가 흐르고 있고, 길모퉁이마다 오물이 산처럼 쌓였다. 역병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개선을 위해 선봉에 나선 인물이 1852년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 3세이다.

다음에 계속 (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하수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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