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조례를 통해본 한미 FTA

편집국
eco@ecomedia.co.kr | 2007-04-19 14: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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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남 순 (환경법률센터 변호사)
한미 에프티에이(FTA)에 8차 협상이 진행 중이다. 무역촉진권한법이 2007년 6월 만료되기 때문에 8차 협상이 사실상 마지막 협상절차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미 FTA는 우리사회 시스템 전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협상을 체결하려고 하는 쪽에서야 당연히 협상체결이 이롭다고 말할 것이니 반쯤 접어들어야 할 테다. 계속 양보만 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자면 그다지 이로울 것도 없는 협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듯 하다.

언론의 입과 귀를 따라가면서 나름대로 균형 있는 시각을 취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해 보지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영 종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당장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는지도 영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공공정책의 후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한미 FTA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까 체감할 수 있는 사례는 없을까. 공공 정책 중에서도 환경정책이 후퇴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 사례로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미국 대 EU 사건, 에틸사 대 캐나다 사건이다. 미국 대 EU 사건은 EU가 성장촉진 호르몬을 사용하여 사육된 육류의 수입을 금지하자 미국이 이에 대하여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조치라며 WTO에 제소한 사건이다. 결과는 EU의 결정이 협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에틸사 대 캐나다 사건은 캐나다 정부가 미국의 화학제품 기업인 에틸사가 생산하는 석유첨가제(MMT)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환경규제를 가하자 에틸사가 캐나다 정부가 영리활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한 사건이다. 캐나다 정부는 1300만 달러(130억원)를 배상해야 했으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철회해야 했다1). EU와 캐나다의 공공정책의 정당성이 경제논리를 넘어서지 못한 채 후퇴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웃나라의 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의회가 의결한 학교급식조례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였다2). 문제가 된 학교급식조례의 내용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학교급식시 당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우선 사용한다. 식재료나 식재료 구입비 일부를 지원하되 이때 지원금은 당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입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 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솔선수범하여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겠다는데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현행 학교급식법에 따르면 학교급식 실시에 관한 사무는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일에 속한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할 책임은 부모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급식조례를 마련하는 일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사무이고 이는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GATT 규정에는 수입산품을 국내산품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지 못한다는 내국민대우원칙이라는 것을 두고 있는데 특정 지자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국내산품 보호에 해당하고 이는 내국민대우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학교급식조례는 학생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일 뿐 수입 농산물을 국내농산물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대법원은 수입농산물과 국내 농산물의 차별이라는 측면을 중하게 여겨 학교급식조례는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학교급식조례사건은 한미 FTA가 가져올 영향이 어떤 것일지 짐작케 한다. 학교급식조례사건은 GATT와 관련한 사례이긴 하지만 내국민대우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한미 FTA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간장, 고춧가루 등 양념에서부터 김치 만두에 이르기까지 음식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고 지난해에는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유난히 급식사고도 많았다. 급식으로 인한 사고가 분명함에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처벌을 강화해야 하니 하지만 누군가가 머리 숙여 사과하면 사건은 일단락된다.

집단 식중독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접하고 보면 급식사고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 보인다. 그리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그저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직접 싸주지 못한 자신들을 반성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집단 급식에서 청결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깨끗하고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 할수 있는데 이는 집단 급식사고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조례제정을 통하여 안전한 식품을 아이들에게 먹이겠다는 지방정부의 정책이 타파해야 할 불합리한 정책이라 할 수는 없다. 세계무역의 자유화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권장해야 할 정책이 실현되지도 못하는 사태를 두고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자유무역원칙도 중요하지만 자유무역원칙이 모든 가치에 우선할 수 없다. 또한 모든 것에 자유무역원칙이 적용되어서도 안 된다. 음식은 분명 공산품과는 다르다. 공산품은 없으면 좀 불편할 뿐이지만 음식은 생존과 직결된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아이들의 피와 살이 되고 그래서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은 거짓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식재료의 문제는 먹을거리의 문제를 넘어 땅의 건강성에 관련된 문제이며 땅의 건강성 회복은 이 땅의 농업의 회복과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학교급식조례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 그리고 땅의 가치에 대한 고민보다는 법논리를 우선시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급식조례사례는 우리나라의 법정에서 지방자치단체 의회와 단체장간의 다툼으로 벌어졌지만 한미 FTA하에서 미국의 기업이 한국의 정책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면 그 싸움은 우리의 법원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학교급식조례에서 보듯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의 법원에서도 학생들의 건강보다는 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밀리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유사한 사례가 한미 FTA하에서 발생했을 때 우리의 법원조차 막아주지 못한 일을 다른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1) 이러한 소송이 가능한 것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기업들이 이윤추구 활동에 방해가 되면 FTA를 체결한 상대방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하는데 한미 FTA에도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두고 있다.

2) 대법원 2005. 9. 9. 선고 2004추10 학교급식조례재의결무효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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