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국내 상수도에서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되고 있지만, 여전히 법적 수질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28년까지 기준을 만들고 정수장 모니터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EU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늦은 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불확실성과 정책·기술 준비 부족이 맞물려 ‘감시 단계’에 머물러 온 것이라면서도 더 늦기 전에 단계적 규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천 종 PFAS, 측정 기술·정책 모두 ‘시간 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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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PFAS는 극미량(나노그램/리터, ng/L 수준)까지 정확히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통일된 분석법과 품질관리 체계를 먼저 갖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대구 매곡·문산정수장과 구미하수처리장에서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과 과불화옥탄산(PFOA)이 검출됨에 따라 환경부와 대구시가 관련 3종을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어 국내도 먹는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2018년 이후 PFOA, PFOS, PFHxS 등을 ‘수질감시항목’으로 지정하고, PFOA·PFOS 합계 70ng/L, PFHxS 480ng/L 수준의 감시기준을 설정해 모니터링 위주의 관리를 해왔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강화된 규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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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상수도 PFOA·PFOS 기준을 4ng/L로 크게 낮추고, EU도 2026년부터 PFAS 그룹 기준을 도입하는 등 주요국 규범이 최근 몇 년 새 급변했다. 한국 정부는 “국제 동향과 정합성을 맞추는 최종 규범 기준 설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왔지만, 결과적으로 감시 단계에 머문 채 규제 도입 시점을 늦춰온 셈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기준치 마련 어려워...가능한 한 낮추는 게 세계 흐름
PFAS의 건강 영향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2023년 PFOA를 인체 발암성이 확실한 ‘Group 1’으로 격상했다. 신장암·고환암과 관련된 제한적 근거뿐 아니라 면역독성, 발달독성, 간독성 등 다양한 건강 영향이 지적된다. PFOS는 ‘발암 가능 물질’(Group 2B)로 분류돼 있으며, 면역·호르몬 교란, 콜레스테롤 증가, 발달 영향 등의 위험이 제기된다.
공통적인 문제는 체내에서 수년간 머무는 긴 반감기 탓에 노출이 축적된다는 점이다. 특히 태아·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여기까지는 안전하다”는 명확한 역치를 설정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EPA는 상수도 기준을 4ng/L 수준까지 끌어내렸고, 기존 WHO 잠정안(100ng/L 수준)에 대해서도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준치 이하면 완전 안전, 초과하면 곧바로 위험이라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가능한 한 낮게(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줄인다’는 방향으로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준 초과 없음은 곧 안심?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 감시기준을 초과한 정수장은 없다”며 국민 불안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PFOS·PFOA 합계 70ng/L 등 현행 감시 기준을 넘는 사례가 없다는 점은, 적어도 일부 해외에서 보고된 것과 같은 국지적 대규모 오염사고 수준은 아니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수돗물에 미량 검출되는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은 발암물질로 지정된 항목은 아니며 검출농도는 문산정수장 0.207㎍/L, 매곡정수장 0.267㎍/L로서 호주를 제외한 외국의 권고기준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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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기후에너지환경부 |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미국·EU의 최신 기준보다 훨씬 느슨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감시 대상도 대표적인 몇 종에 한정돼 있어, 다른 PFAS 물질이나 총량 기준, 초저농도 노출의 건강 영향까지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긴 어렵다. 취수원 인근 군부대와 산업단지, 소규모 정수장, 지하수·소규모 수도 등 ‘블라인드 존’으로 남아 있는 영역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재 데이터만 보면 ‘지금 당장 대형 건강위기 신호가 뚜렷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렇다고 ‘국민이 충분히 안심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건너뛰기에는 기준과 모니터링 체계가 여전히 과학·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2028년 기준 마련, “국제 흐름 고려하면 늦는 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10월 30일 발표한 ‘과불화화합물 수돗물 수질기준 마련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8년까지 PFAS 상수도 수질기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EU는 개정 음용수 지침에 따라 2026년부터 PFAS-20 합 0.1µg/L, PFAS 총량 0.5µg/L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고, 미국도 2024년 PFAS 상수도 규정을 확정해 유틸리티별 이행만 남겨둔 상태다.
이와 비교하면 “2028년까지 기준 마련”은 국제 규범과 과학적 근거가 이미 제시된 뒤에도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는 셈이다. 사실상 산업계와 지자체의 대응 준비를 위한 ‘정치적 완충 기간’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U가 2026년부터 PFAS 그룹 기준을 적용하고, 국내에서도 학계·전문가들이 ‘단계적 규제 강화’와 ‘감시기준의 수질기준 격상’을 요구하고 있어, 2028년 최종 기준 도입 전 중간 단계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효율 정수기술, 국가 재정과 오염자 부담 필요
PFAS 저감을 위한 기술적 수단은 이미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 대표적으로 입상 활성탄(GAC), 이온교환수지(IX), 역삼투(RO)·나노여과(NF) 등 고압 멤브레인 공정이 꼽힌다. 입상 활성탄은 비교적 검증된 기술로 운영비와 교체 주기 관리가 중요하며, 이온교환수지는 선택성과 효율이 높지만 수지 교체·폐기 비용이 변수다. 고압 멤브레인은 제거 효율이 뛰어난 대신 에너지 비용과 농축수 처리 문제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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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를 전국 상수도 시스템에 적용할 재정·제도적 기반이다. 전문가들은 “국가 재정과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을 결합한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군부대와 소방, 반도체·도금·불소화학 등 고위험 배출원을 지정해 PFAS 사용·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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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불화화합물은 탄소(C)와 불소(F)의 강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인공합성 유기화학물질로 물과 기름을 잘 튕겨내며, 열과 화학물질에 강하다. |
관리와 부담금 제도를 강화하고, 이를 정수장 설비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농어촌·중소 지자체가 운영하는 소규모 정수장은 별도의 지원체계가 필수적이다. 광역 단위 공동처리, 표준화된 설계 패키지, 중앙정부 매칭 펀드 없이는 PFAS 전용 설비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아울러 “PFAS 제거율 몇 % 이상, 정수 후 농도 몇 ng/L 이하”와 같은 성능 기준을 제시하고, 국립환경과학원 등 공인기관이 기술 검증·인증 체계를 운영해야 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수장 끝단 처리만으론 한계… 사용 단계 감축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PFAS 문제를 상수도 정수 단계에서만 해결하려 해서는 비용·효율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경고한다. 소방폼, 도금·반도체 공정, 불소계 코팅 등에서 PFAS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거나 급격히 줄이고, 대체물질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토양·지하수 정화, 소방훈련장 관리 강화 등 ‘원천 저감’이 이뤄질 때 정수장 처리 부담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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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향 대한상하수도학회장은 “과불화화합물 수질기준 강화 계획은 먹는 물에 대한 국민의 안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선진 정수처리기술이 수반되어야 하는 동시에, 현장의 여건도 고려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밝히며, 정부가 국민 안전을 위해 과불화화합물 수질기준 마련 등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 힘을 싣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환경보건 전문가는 “지금까지는 ‘감시’ 위주로 시간을 벌어 왔다면, 앞으로는 사용 단계 감축과 정수 기술 도입을 함께 추진하는 ‘전 주기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국제 기준을 따라잡는 데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 보호와 오염자 책임을 분명히 하는 한국형 PFAS 관리 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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