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비정상적으로 높은 바닷물 온도가 수일 이상 이어지는 ‘해양 폭염’이 해양생태계를 넘어 저·중소득국 해안지역 어린이의 영양 상태와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과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36개 저·중소득국의 해안지역 9,813곳에서 수집된 어린이와 여성의 건강·생존 자료를 인근 해역의 해수면 온도 자료와 결합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저·중소득국의 해양 폭염과 영양 부족’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연구진은 건강 상태가 조사되기 전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거주지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해양 폭염을 파악한 뒤, 고정효과 로지스틱 회귀모형을 이용해 해양 폭염 노출과 건강지표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사 전 24개월 동안 발생한 해양 폭염 횟수가 표준편차 1만큼 증가할 때 아동 사망의 발생 오즈는 5.4%, 소모증은 6.5%, 발육부진은 8.8%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모증은 키에 비해 체중이 지나치게 적은 상태로 급성 영양실조를 보여주는 지표다. 발육부진은 나이에 비해 키가 작은 상태로 장기간 지속된 영양 부족이나 질병 등의 영향을 반영한다.
다만 이 수치는 사망률이나 영양실조 발생률이 각각 5.4~8.8%포인트 상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해양 폭염 발생 횟수가 표준편차 1만큼 증가했을 때 통계모형에서 계산된 각 결과의 ‘발생 오즈’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해양 폭염의 최고 해수면 온도와 누적 강도 등 다른 지표를 적용했을 때도 비슷한 연관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기 중 폭염의 영향을 추가로 고려한 분석에서도 주요 결과 대부분은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연구진은 해양 폭염이 어린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로 수산물 공급 변화를 지목했다. 수산물은 상당수 해안지역 주민에게 단백질뿐 아니라 철분, 아연, 칼슘,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 등 주요 미량영양소를 공급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수산식품이 저·중소득국 주민의 영양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해수 온도가 급격히 오르면 어류의 분포지역이 이동하거나 폐사가 늘어날 수 있다. 일부 어종의 성장과 영양 성분, 번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어획량과 수산물 공급이 줄어들면 어민의 소득 감소와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연구에 참여한 브라이언 티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가정의 식량 구매 능력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같은 필수 서비스에 지출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 폭염의 영향은 산업화된 상업어업보다 소규모 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예상과 달리 농촌보다 도시지역에서 연관성이 강하게 관찰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연구진은 도시 거주자가 직접 어업이나 양식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낮더라도, 수산물을 시장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에 더 민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거나 대체 식품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 저소득층이 시장 충격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해양 폭염과 아동 건강지표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을 분석한 관찰연구다. 해양 폭염이 영양실조나 사망을 직접 일으켰다는 인과관계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개별 가정의 수산물 섭취량이나 지역별 어획량, 수산물 가격 변화를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해양 폭염이 어류 공급 감소와 가격 상승을 거쳐 어린이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은 현재로서는 가능한 경로에 해당한다.
해양 폭염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육상 폭염, 빈곤, 식량 유통망 불안, 감염병, 의료 접근성 등 다른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연구진도 해양 환경 변화가 건강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경로를 규명하기 위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양 폭염은 기후변화와 함께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인용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평가에 따르면 해양 폭염 발생 빈도는 1980년대 이후 약 두 배로 증가했으며, 2006년 이후 나타난 빈도 증가의 상당 부분에는 인간의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일반적으로 특정 해역의 수온이 과거 30년간 같은 시기 수온의 상위 10%를 넘는 상태가 5일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해양 폭염으로 설명한다. 연구진은 해수온 예측 자료를 식량·보건 분야의 조기경보체계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해양 폭염이 예상되는 지역에 영양 지원과 현금 지원, 학교급식 및 보건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면 취약계층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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