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PA 공기청정기, 40세 이상 성인 인지기능 개선해?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04-27 22: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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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가정에서 사용하는 HEPA 공기청정기가 40세 이상 성인의 뇌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HEPA는 ‘고효율 미립자 공기’ 필터를 뜻하는 기술로, 공기 중 미세먼지와 꽃가루, 세균, 일부 바이러스 등 작은 입자를 걸러내는 데 사용된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HEPA 공기청정기를 한 달간 사용한 40세 이상 참가자들은 가짜 공기청정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실행기능과 정신적 유연성을 평가하는 인지검사를 더 빠르게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 폭은 평균 12% 수준이었다.

이번 연구는 대기오염, 특히 미세먼지 노출이 호흡기·심혈관 질환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계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는 기존 연구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 최근 환경보건 분야에서는 가정 내 HEPA 공기청정기 사용이 미세먼지 노출을 줄이는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로 인지 기능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연구진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 거주하는 30~74세 성인 119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서머빌은 93번 주간고속도로와 28번 국도 등 주요 도로가 지나는 지역으로, 교통 관련 대기오염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다. 연구진은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이 공기청정기의 건강 효과를 확인하기에 적합하다고 봤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두 그룹에 배정됐다. 한 그룹은 먼저 한 달 동안 HEPA 필터가 장착된 실제 공기청정기를 사용한 뒤, 다음 한 달 동안 필터가 없는 가짜 공기청정기를 사용했다. 다른 그룹은 반대 순서로 가짜 공기청정기와 실제 공기청정기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매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지 기능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에는 순서대로 배열된 숫자 사이를 빠르게 연결하는 과제가 포함됐다. 이는 시각 기억력과 운동 속도를 평가하기 위한 방식이다. 또 숫자와 글자를 번갈아 연결하도록 해 실행기능과 정신적 유연성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전체 표본의 약 42%를 차지한 40세 이상 참가자들은 HEPA 공기청정기를 사용한 뒤 실행기능과 정신적 유연성 검사에서 가짜 공기청정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평균 12% 빠른 수행 속도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참가자들이 실내에서 보낸 시간, 필터 사용 여부, 검사 당시 스트레스 수준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뒤에도 유지됐다.

연구진은 이 같은 변화가 겉으로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뇌 건강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차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지 기능은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저하될 수 있으며, 작은 수준의 기능 저하도 건강과 삶의 질, 사망 위험과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일상적인 운동 증가로 얻을 수 있는 인지적 이점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되는 이유는 대기오염이 노출 후 몇 시간 안에도 정신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존 연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기청정기가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지만, 교통량이 많은 도로 인근처럼 오염원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도 인지적 손상을 줄일 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특히 고속도로나 주요 도로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교통 관련 대기오염에 더 많이 노출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환경이 호흡기·심혈관 질환뿐 아니라 신경계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에서는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이 교통량이 많은 지역 인근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아, 대기오염 피해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초기 단계의 결과라는 점도 강조했다. 전체 참가자 119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10명 미만에 그쳐, 고령층에서 HEPA 공기청정기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공기청정기 사용 기간이 한 달에 불과해, 장기간 사용했을 때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유지되거나 더 커질지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공기청정기가 어떤 생물학적 경로를 통해 인지 기능에 영향을 주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일부 연구에서는 미세먼지 노출이 뇌의 백질 감소와 관련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백질은 뇌세포 간 전기 신호 전달과 뇌 영역 간 연결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기오염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은 정신적 유연성과 실행기능을 조절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앞으로 HEPA 공기청정기를 통한 미세먼지 감소가 실제로 뇌의 백질을 보호하는지, 나아가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거나 회복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를 추가로 분석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실 때와 HEPA 필터로 정화된 공기를 호흡할 때 체내 대사산물 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공기청정기 사용만으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교통 배출 저감과 주거환경 개선 등 구조적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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