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물 속 미세플라스틱, 인간 활동 수십 년의 흔적 남긴다

황원희 기자
eco@ecomedia.co.kr | 2026-10-23 22: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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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바다와 호수, 육상 퇴적층에 쌓인 미세플라스틱이 수십 년간 이어진 인간 활동의 흔적을 추적하는 지질학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플라스틱의 종류와 생산·사용 시기가 서로 다른 만큼 퇴적층에 남은 미세플라스틱을 분석하면 특정 시기의 산업활동과 소비 패턴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독일 라이프니츠 발트해연구소(IOW)와 영국 레스터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Earth-Science Reviews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인간 활동이 지구환경에 남긴 장기적인 흔적을 기록하는 인류세(Anthropocene) 표지자로 활용될 가능성을 검토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크기 1마이크로미터(㎛)에서 5㎜ 사이의 플라스틱 입자를 말한다. 큰 플라스틱 제품이 햇빛이나 마찰, 풍화작용으로 잘게 부서지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작은 크기로 생산되기도 한다.

합성섬유 의류에서 떨어져 나오는 섬유 조각이나 플라스틱 포장재와 농업용 필름의 파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입자는 크기가 작아 바람과 하천, 해류를 따라 장거리 이동할 수 있고 인간 활동이 거의 없는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후 육상과 담수, 해양 퇴적층에 축적되면서 특정 시기의 인간 활동을 기록하는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이 미세플라스틱에 주목한 이유는 퇴적물에 묻힌 뒤 비교적 장기간 보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표면에 노출된 플라스틱은 햇빛과 산소, 온도 변화 등에 의해 계속 분해되지만 퇴적층 내부에서는 이러한 외부 요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의 종류와 입자 형태가 장기간 유지된다면 과거 환경을 확인하는 일종의 시간표지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플라스틱 종류별 생산시기가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초기 합성수지 가운데 하나인 베이클라이트는 20세기 초부터 사용됐지만 현재는 사용량이 크게 줄었다. 반면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등은 20세기 중반 이후 대량 생산과 소비가 급증했다.

따라서 퇴적층의 깊이와 연대를 분석한 뒤 각 층에서 어떤 고분자 물질이 얼마나 발견되는지를 조사하면 시대별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의 변화가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미세플라스틱 기록을 통해 특정 사회적 사건까지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당시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 소독제 포장재 등의 생산과 소비가 급증했다.

이들 제품이 환경에 유출된 뒤 장기간 풍화되면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고 결국 퇴적층에 축적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의 조성과 양이 특정 시기의 인간 활동을 보여주는 독특한 패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세플라스틱은 최근 논의돼온 인류세를 구분하는 지질학적 표지자 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돼 왔다.

지질학에서는 지구의 역사를 암석과 퇴적층에 남은 특징을 기준으로 여러 시대와 시기로 나눈다.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이 기후와 생태계, 지질환경까지 변화시키면서 일부 과학자들은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인류세 작업그룹은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인간 활동이 급격히 증가한 시점을 새로운 지질시대의 시작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인류세를 공식 지질시대로 채택하는 안은 2024년 국제 지질학계 심의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와 별개로, 이를 공식 지질연대 단위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진은 미세플라스틱이 이러한 논의에서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리뷰 논문의 주저자인 IOW 해양학자 줄리아나 이바르 두 술 박사는 미세플라스틱이 육상과 담수, 해양 환경에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는 점에서 지역을 넘어 비교할 수 있는 표지자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플라스틱의 장점은 단순히 양이 많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입자의 형태와 색상, 재질, 폴리머 종류 등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갖고 있어 인간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채취한 퇴적물 코어를 분석해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특히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등 주요 플라스틱이 퇴적층에 나타나는 시점이 실제 상업적 생산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특정 깊이의 퇴적층에서 나타나는 플라스틱 종류와 양이 20세기 이후 플라스틱 생산량 변화와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면 미세플라스틱을 시대 구분의 지표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퇴적층에 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이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실제로 같은 위치에 머무는지 확인해야 한다. 입자가 퇴적층 내부에서 위아래로 이동한다면 특정 시기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 활동이나 지하수 흐름, 퇴적물 교란, 해저생물의 활동 등에 의해 입자가 이동할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연구진은 향후 현장 연구를 통해 퇴적층 내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이동하는지, 그리고 햇빛과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장기간 화학적·물리적으로 안정하게 유지되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러한 조건이 확인된다면 미세플라스틱은 오염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를 넘어 인간 활동이 지구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기록하는 장기적인 지질학적 흔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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