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병은 단순히 더운 날씨에 걸리는 병이 아니다. 우리 몸이 외부의 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 자체가 무너지는 상태다. 땀을 흘리고 혈관을 확장해 열을 밖으로 내보내던 생리적 조절체계가 한계를 넘으면 체온은 급격히 상승하고, 결국 생명을 위협한다.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여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종종 ‘지구도 열사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는 무더위가 며칠 이어지면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를 식히고, 빗물이 증발하면서 다시 열을 빼앗아갔다. 열대지역의 스콜도 비슷한 자연의 냉각 과정이다. 생태계는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이면서도 물의 순환과 증발산을 통해 스스로 열을 조절한다.
그러나 최근의 여름은 다르다. 폭염은 길어지고, 열대야는 넓어지고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같은 계절, 때로는 같은 지역에서 극단적으로 교차한다. 과거에는 대도시의 특수한 현상으로 여겨졌던 열대야가 이제는 전국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 전체의 환경조건을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장기간의 기상관측 자료를 이용해 기온 상승 추세를 공간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수도권과 대도시 등 도시화가 집중된 지역에서 기온 상승 추세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고온화 지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물론 이를 도시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근본적인 배경이며, 대기순환과 해양의 변화, 토지피복, 수분 조건, 도시 열섬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생태학자는 오히려 이러한 복합성을 중요하게 본다. 자연현상은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결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토지이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표면에 도달한 태양에너지는 토지의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르게 처리된다. 숲과 초지에서는 상당 부분이 증발산에 사용된다. 식물이 뿌리로 흡수한 물은 잎을 통해 대기로 방출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는다. 나무의 그늘은 지표면에 직접 도달하는 태양복사를 줄인다. 토양과 식생은 물을 저장하고 천천히 순환시킨다.
반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시에서는 증발산이 제한된다. 표면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했다가 다시 열의 형태로 방출한다. 특히 야간에도 저장된 열이 방출되기 때문에 열대야가 심해진다. 도시 열섬은 단순히 ‘도시가 많아서 덥다’는 현상이 아니라 에너지와 물의 순환이 바뀐 생태학적 현상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국토의 녹지는 단순한 경관시설이 아니다. 숲과 습지, 하천, 초지, 농경지와 도시숲은 모두 국토의 ‘체온조절장치’다.
그동안 우리는 기후변화 대책을 주로 탄소의 관점에서 생각해왔다.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가, 산업과 수송 부문에서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정책의 중심이었다. 이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전환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배출원을 줄이는 정책’과 ‘국토의 기후조절 능력을 회복하는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
생태학에서는 생태계가 단순히 생물종의 집합이 아니라 에너지와 물질이 순환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본다. 숲은 탄소를 저장하는 동시에 물을 순환시키고, 토양을 보호하며, 미기후를 조절한다. 습지는 탄소를 저장하면서 홍수를 완충하고 수질을 정화한다. 하천변 식생은 물과 육지를 연결하면서 그늘을 제공하고 수온을 낮춘다. 초지와 농경지도 관리 방식에 따라 탄소를 저장하고 물순환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탄소흡수원을 단순히 ‘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가’로 평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하게 기능하고 있는가다.
건강한 숲은 탄소를 저장한다. 건강한 습지는 물을 저장한다. 건강한 토양은 탄소와 수분을 저장한다. 연결된 녹지축은 생물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의 미기후를 완충한다. 이처럼 생물다양성, 탄소순환, 물순환, 기후조절은 서로 분리된 정책 영역이 아니다.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태백·정선·평창과 같은 지역의 여름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높은 고도가 서늘한 기후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토지이용 강도와 넓은 산림·초지 등 자연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이 남아 있는 국토는 단순히 ‘개발되지 않은 땅’이 아니라 스스로 열과 물을 조절하는 거대한 생태 인프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토정책의 패러다임도 달라져야 한다. 균형발전은 필요하다. 그러나 균형발전을 모든 지역을 도시화하고 동일한 토지이용 구조로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산림이 많은 지역은 산림의 가치를, 습지가 많은 지역은 습지의 가치를, 농촌은 농촌 생태계의 가치를 살리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곧 지역발전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낡은 이분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특히 도시에서는 녹색 기반시설을 도로·상하수도와 같은 수준의 핵심 기반시설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도시숲, 가로수, 공원, 하천, 습지, 빗물정원, 옥상녹화 등은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물이 아니다. 폭염을 완화하고 빗물을 저장하며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기후적응 인프라다.
농촌 역시 마찬가지다. 논과 밭을 단순히 식량 생산 공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물과 탄소를 순환시키는 생태계로 관리해야 한다. 농업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토양유기탄소를 높이고, 논습지와 농수로, 농촌 숲과 하천변 식생을 연결한다면 농촌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받는 공간을 넘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다만 자연생태계의 역할을 과장해서도 안 된다. 산림과 습지의 탄소흡수만으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온실가스를 상쇄할 수는 없다. 생태계 흡수원은 배출 감축을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수단이다. 특히 산림과 토양에 저장된 탄소는 산불, 가뭄, 병해충, 토지전환 등에 의해 다시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흡수원은 양적인 확대뿐 아니라 생태계의 회복력과 장기적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기후변화 대책은 ‘탄소를 얼마나 줄였는가’와 ‘나무를 얼마나 심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건강한 국토를 만들었는가, 얼마나 물과 탄소의 순환을 회복했는가, 얼마나 폭염과 가뭄과 홍수에 견딜 수 있는 생태적 회복력을 갖추었는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의 국토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도시와 농촌, 산림과 하천, 습지와 해안이 서로 연결되어 에너지와 물과 탄소를 순환시킨다. 이 연결고리가 끊어질수록 국토는 외부의 기후충격에 취약해지고, 자연이 스스로 더위를 식힐 능력도 떨어진다.
지구의 열사병을 치료하는 일은 거대한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양에너지가 머무르는 방식과 물이 순환하는 방식을 바꾸고, 생태계가 가진 자연의 냉각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기후변화 정책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자연이 스스로 기후를 조절할 수 있는 국토를 얼마나 남겨두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치료하는 일이다. 숲을 건강하게 하고 습지를 복원하며 도시의 녹지를 늘리고 토양과 하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이미 뜨거워진 국토의 체온을 낮추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추진할 때 비로소 기후변화 대책은 완성된다.
지구의 체온을 낮추는 가장 오래된 기술은 어쩌면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은 숲이고, 습지이며, 흙이고, 물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복잡한 관계다.
자연을 보전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인 기술이다. 이제 국토를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생태계로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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