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의 외길인생

편집국
eco@ecomedia.co.kr | 2005-03-02 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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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가업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가고 있지만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대를 물려가며 가업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많다. 전통의 맥을 잇고자 하는 장인에서부터 학문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도 매우 넓고 다양하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고 아버지가 또는 할아버지가 해왔던 일을 후대가 자랑스러워하며 지켜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가풍이 아닌, 부모의 성화가 아닌, 그리고 자식들이 원해서 자신의 진로를 바꾼 케이스가 아니라 우연히 父子가 한 길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자용 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와 그의 부친인 구돈회 前 서울시건설안전본부장, 김홍선 前 대전상수도사업본부장과 그의 아들인 김정호씨(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시설부)가 부자끼리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주인공들로 주목받고 있어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인터뷰/구자용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부 교수

‘제도개선’ 통해 환경공학부문 활성화해야

후배들의 제몫에 보람, 실험기자재 부족 아쉬워
교육 질적수준 향상 및 환경전문가 육성이 시급

“환경공학, 21세기 인간과 가장 밀접한 학문”
인원 늘어나는 반면, 질적인 측면은 답보상태

현재 시립대 환경공학부 구자용(42) 교수는 원래 토목분야의 도시수문학을 전공했다. 그의 부친인 구돈회(69) 씨 역시 토목직 공무원을 시작으로 서울시건설안전본부장을 거쳐 충북도행정부지사를 끝으로 37년간의 공직생활을 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구자용 교수는 대학원 석사과정시절 일본 상수도관망 부문에서 일인자인 일본 동경도립대학교 고이즈미 아끼라 지도교수가 당시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 발표를 하러 왔을때 우연한 지인의 소개로 지도교수가 일본유학을 권유해 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물론 학위도 일본에서 받았다.
“21세기 인간과 가장 밀접한 학문이라는 점에서 환경공학부의 큰 매력이 있습니다. 상수도를 비롯한 하수도 등의 인간생활의 기본이자 근간이 되는 산업이 바로 이 분야이지요.”
서울시립대학교는 지난 ’74년에 환경공학부가 생겼다. 국내에서는 부산 동아대학교 다음으로 생겼지만 지금은 학부 학생수가 80명으로 늘어나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 구 교수의 설명이다.
21세기의 코드 역시 ‘환경’인만큼 그는 미래 환경공학의 비전을 낙관한다. 환경공학부문이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리드하는 삶의 질 향상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구 교수는 전망한다. 졸업한 학생들이 직장에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제 몫을 다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보람이 큰 만큼 가슴 한편에는 큰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공대는 실험기자재가 중요한데 사립학교보다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이 구 교수의 시각이다.
평등교육을 강조한 나머지 양적인 확대에 치중하다보니 대학의 인원이 늘어나는 반면, 질적인 측면은 답보상태라며 안타까워한다.

제도개선 통해 이공대 출신 사회정착 환경시급
적은 환경전문도 환경공학부문 발전저해 요소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대학정원을 현재보다 3/4으로 줄여나가는 대신 질적인 향상측면의 비중을 높여나간다는 방안도 발표된 바 있어 구 교수는 내심 기대하는 바도 있지만, 문제는 대학정원의 감소가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이공대 출신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IMF당시에도 가장 먼저 없앤 부서가 이공계 연구부문이었습니다. 향후 이공대 특히, 환경공학부문이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통해 공공기반기술을 활성화시켜 나가는 일이 발전의 첩경이 될 것입니다. 그 예로 현재 국책연구인 누수방지 및 저감기술개발(프론티어사업단)의 주관기관을 담당하고 있지만 관망분야에 대한 제도적인 법제화가 않된 상태에서 관련회사들이 이러한 연구개발사업에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이 어렵겠지요.”
미흡한 제도와 더불어 환경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도 환경공학부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라고 구 교수는 지적한다.
환경부 상하수도국의 경우에도 환경부예산의 절반이상을 사용하면서 질적인 성장은 차치하고 규모의 성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오히려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기자에게 반문한다. 충분히 설득력 있고 바람직한 반문이다.
그나마 서울시립대학교의 경우 환경부에 기술고시(환경직)로 20여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자체, 공사, 기업체, 연구소, 대학 등 사회 각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시정개발연구원에서 6개월 정도 머무른 후 서울시립대로 왔다. 올해로 교수생활 9년차에 접어들고 있어 세월이 유수같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쯤 교수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전공이 토목이라 건설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정통한 개념의 환경공학 의욕이 구 교수 지론
‘누수방지 및 저감기술 개발’프로젝트 등 추진

교육이 100년 대계 사업인 만큼 환경공학에 대한 구 교수의 신념과 긍지, 그리고 자부심은 남다르다. 정통한 개념의 환경공학을 해보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오랜 연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경공학에 대한 그의 연구와 열의는 학계는 물론 업계에서까지 상당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01년부터 추진되어 오는 ’07년까지 연계되는 ‘누수방지 및 저감기술 개발’프로젝트에서 총괄연구책임을 맡아 대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국책연구과제에서는 상수도 관망에서의 배수블럭별로 GIS를 이용한 누수사고의 정보관리 시스템과 수압분포도를 개발함으로써 누수량 수지분석기술을 개발하였으며, 또한 대전광역시에서 시범시공에 들어가 있는 누수감지용 강관인 수도용 누수감지관을 개발, 액체관의 손상위치 검출 시스템 및 검출 방법으로 특허를 획득하는 등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보다 선진화된 기술공법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 미래 상수도 관망 부문에서 장밋빛 미래가 예고되고 있다.
각종 유망산업이 시시각각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제도개선을 통한 활성화, 교육의 질적수준 향상, 환경전문가의 양성’이 세 가지가 환경공학부문의 흥망성쇠를 주도할 잣대로 등장했다.
‘성실하게 살자’는 부친의 가훈아래 묵묵히 환경공학도의 후배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구자용 교수. 구 교수는 현재 도출되어 있는 여러 가지 난재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미래산업은 환경공학이 주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큰 믿음이 있기에 누구나 예상치 못했던 큰 그림을 줄곧 잘 그려내곤 한다. 향후에도 어떤 구도로 대작을 만들어 나갈지 그의 작품에 거는 우리 모두의 기대는 새삼 크다.

* 구자용 교수- 충북 음성. ’90년 2월 서울시립대 토목공학 공학사, ’92년 2월 서울시립대 토목공학(수자원공학) 공학석사, ’97년 3월 동경도립대 환경공학(상하수도계획) 공학박사,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부교수, 건기원 심의위원, 하수도 민자사업 평가단 평가위원, 서울시 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대한상하수도학회 총무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7개 과제에 대한 연구실적이 있으며, 저서 12편, 연구논문은 총 86편으로 외국학술지 9편, 국내학회지 15편, 기타 62편을 발표한 바 있다.


인터뷰/구돈회 前 서울시건설안전본부장

서울시 한강수질개선 ‘초석’다진 장본인

청계천 하수관거공사 10년 걸쳐 복개 완료해 큰 보람
한강 양안에 분류하수관(차집관거) 부설한 ‘일등공신’

시설부기감과 행정부이사관 겸직한 인물
’62년 5월에 서울시 하수과 시설계로 인연

구돈회(69)씨. 현 시립대학교 구자용 교수의 부친이다. 前 서울시건설안전본부장을 역임했고, 충북도 행정부지사를 마지막으로 ’97년 10월 퇴직해 37년간 공직생활을 한 공무원 중 한사람이다.
그는 기술직 공무원으로서 ’85년 1월 5일자로 시설부기감과 행정부이사관을 한날 한시에 발령받아 겸직한 케이스로 우리나라 기술직 관료로서는 흔치않은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그는 지난 ’61년 말단 서울시 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딛어 이듬해인 ’62년 5월에 서울시 하수과 시설계로 발령받아 하수도와의 인연을 맺기에 이른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일정시대 때 서울시에 묻은 토관이 약 3천km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막상 하수과가 생겼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라며 당시를 회고한다.
환경학적으로 볼 때 상하수도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具 前본부장의 시각이다. 그는 인체로 말하자면 상하수도는 동맥과 정맥에 해당되는 중요한 기관과도 같아 제대로 배수가 안될 때는 어김없이 넘치는 것처럼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에 걸릴 수 있다며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이지만 맡겨진 하수과 하수처리장 건설 및 기획업무를 천직으로 알고 후회없이 많은 일을 하였다고 자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랑하수처리장 등 대형차집관거 설치
한강수질개선 이룩한 ‘일등공신’평가

말단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9급 발령을 받고 묵묵히 하수도분야에서만 20년 이상을 일한 바 있다. 지난 ’90년 대홍수 때에는 서울시 하수도국장을 맡아 서울시내의 간선도로는 물론 미개수 하천이 범람하여 침수되고, 일산 제방이 무너지는 등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하수도 체계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복잡하여 무교동 같은 경우에는 분류하수관을 묻을 곳이 없었지요. 답답한 나머지 일본의 하수도 체계를 둘러보기 위해 일본에도 가 보았습니다. 일본 東京道 역시 분리관로가 되어있지 않아 비가 올 때에는 도로에 하수가 채였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침수현상은 감내하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는 동대문운동장에서부터 마장동에 이르는 구간의 청계천 복개공사를 ’63년 오관수교 착공을 시작하여 ’72년에 마장동까지 복개를 완료한 점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몰라서가 아니라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예산이 부족하여 1990년도 침수지역에 배수시설이 제대로 된 펌프장을 사전에 건설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지만 90년도 대홍수를 경험한 이후 과잉 설치되었다고 말한다.
具 前 본부장은 하수처리장 건설로 지금의 한강수질개선을 이룩한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하수처리장의 기본계획, 설계 및 시공과 한강 양쪽(양안)에 분류관거부설로 한강수질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각종 산업의 발달로 한강상류의 각 도시들이 하수처리장이 없어 무처리 방류를 일삼았다고 전한다. 서울시에서도 하수처리장이 없기는 마찬가지로 청계·중랑·탄천·안양천·불광·홍제천으로 하수처리를 하지 않고 무처리 방류함으로써 ’70년대 한강 인도교부근의 수질이 BOD 10ppm을 넘어 한강은 완전히 죽은 강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具 前 본부장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이에 具 前 본부장(당시 하수처리과장)은 서울시장에게 지금의 중랑하수처리장을 비롯하여 탄천·안양·난지하수처리장 건설과 더불어 한강 양쪽에 대형차집관거를 설치하여 한강의 오염을 근원적으로 개선·방지할 수 있다고 건의하여 뜻을 이루었다.
따라서 그의 노력으로 현재 한강의 수질은 BOD 2~3ppm으로 개선하게 되었으며,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쏘가리와 참게가 사는 새로운 환경으로 거듭 태어난 것을 具 前 본부장은 공무원의 보람으로 느낀다. 각종 어종이 다시 살 수 있고 푸른 한강물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손색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주위 후배들의 평이다.

성수대교 붕괴직후 건설안전본부장 발령
「과적차량」,「맞대기용접」이 화근 불러

토목직으로 하수도에서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그는 공교롭게도 사건의 중심에 서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94년 10월 21일 이후 불과 2개월여 만에 서울시건설안전본부 초대본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의 서울시건설안전본부는 성수대교 붕괴사고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종합건설본부였다. 사고 이후 ’95년도에 접어들면서 ‘건설’ 보다는 ‘안전’이 중요하다는 명분아래 곧바로 개칭했다는 것이 具 前 본부장의 설명이다.
성수대교는 트러스트 공법으로 건설된 최초의 한강 교량이다. 사고 당시에도 보도된 바 있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철 구조물의 용접불량과 과적차량 통행을 예방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절단된 교량부위가 바로 용접된 부위다.
강재와 강재를 용접할 경우 용접부위는 용접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지므로 하중으로 인한 균열이 붕괴의 원인이 됐다면 용접부위 바로 위 또는 아래쪽이 절단됐어야 한다. 또 절단된 수직재 부위가 속부분은 빈채 가장자리만 맞대기 용접된 것이 지적되었다.
용접방식에서도 수직재의 핀강판과 H빔 플랜지는 V컷트하여 X자용접을 하게 돼 있는 시방서와는 달리 맞대기 용접을 했고 그마저도 겉부분만 용접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따라서 용접불량으로 교량하중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용접부위에 과적하중을 받게되어 수직재가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부실시공의 원인이 되었다.
서울시의 적기에 예산부족과 유지 보수관리 소홀로 균열이 계속 진행돼 수 많은 과적차량 통행이 붕괴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매년 겨울 제설작업을 위해 염화칼슘이 뿌려져 교량부식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도 붕괴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이에대해 당시 성수대교 복구공사의 총지휘를 관장했던 具 前 본부장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기술능력은 물론 용접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소위 「맞대기용접」을 한 것이 화근을 불러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具 前 본부장은 트러스트공법이 충격이 가해지면 파괴되는 원리는 유리가 깨어지는 원리와 같다고 설명한다. 금이가면서 쪼개어지고 더 심할 경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최초의 한강다리로 건설되어 기술력도 별반 없는데다 포항제철이 가동된 시기가 ’70년대로서 6.25사변 때 깡통, 포탄피 등으로 철판을 만들어 자재도 좋지 않고 무리한 공기단축 등등이 붕괴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성수대교 완전 복구까지 고생은 말할 수 없어
’90년 배수시설 부족해 서울도심 온통 물바다

사고수습후 완전한 복구까지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 具 前본부장의 설명이다. 무너진 다리를 볼 때마다 동료들이 건설한 것이지만 본인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루빨리 복구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수대교 복구가 한창인 채 상처가 미처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그는 또 한번 가슴을 쓰려내려야 했다.
그는 무엇보다 ’90년 하수도시설 가운데 배수시설이 부족하여 한강은 물론 서울도심인 청계천의 광교주변이 온통 물바다를 이루었던 당시를 가장 잊을 수 없다고 밝힌다.
여름철의 경우 인천만이 만조때에는 한강의 수위가 인도교까지 위험수위에 육박해 불안함에 마음을 졸여야 했고, 하루걸러 한번씩 거의 매일 쏟아지는 폭우에 서울은 온통 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그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수만의 인명이 한강 이남으로 떠내려가는 천지개벽을 하였고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나 한강의 인도교가 떠내려갔으며, 10년도 더 지난 1937년에 지금의 한강다리가 복구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내용은 지난 ’90년 서울시 상수도국장 재직당시 발간한 ‘서울의 홍수’에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무튼 그는 37년이라는 결코 짧지않은 공직생활을 통해 오늘날 서울시 하수도발전에 주춧돌을 놓은 한 사람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와 함께 서울시건설안전본부 초대본부장을 맡아 한강에 건설된 교량구조물과 각종 시설물의 안전의 중요성을 우리나라 전체 국민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각료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돈회-1937년생. 충북 음성. 한양대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을 졸업했다. 토목기술사(상하수도)로 도봉구 부구청장, 목동 신시가지 개발사업소장, 종합건설본부 차장, 하수국장,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을 거쳐 종합건설본부장, 도시시설안전관리본부장, 건설안전관리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서울시 하수도 백서 등 8권의 주요 발간 서적이 있으며, 제2회 전국모범공무원 수상 및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삼성물산 기술고문 및 서울시우회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인터뷰/김홍선 前 대전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양질의 수돗물 안정적 공급’ 최우선과제 돼야

체계적·과학적 관리해야 신뢰받는 수돗물 가능
외국기업 진출 대응위한 전문인력 양성·시설의 현대화 시급

'66년에 초임을 수돗물과의 인연으로 시작
대전시 상수도역사 절반의 변천과정 지켜봐

150만 대전시민에게 깨끗한 수돗물 공급의 책임을 맡아 이를 훌륭하게 수행해오던 김홍선(58) 대전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장이 명퇴를 하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수돗물 사정이 가장 어려웠던 1966년에 초임을 수돗물과의 인연으로 시작하여 대전시 상수도 역사 절반의 변천과정을 지켜보면서 본부장이라는 막중한 중책까지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초 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2년 뒤에 그만 둘 계획으로 업무를 추진하였으며, 이제 본인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되어 후배들의 발전을 위하여 용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전시는 대청호를 비롯한 월평등 3개 정수장에서 1일 최대 105만톤의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도시 인근에 대청호라는 큰 호소가 자리하고 있어 수량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으나, 원수 공급이 단일수계이기 때문에 돌발사고 발생시에는 도시 전체가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이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김홍선 前 본부장은 대청호 보조댐에서 원수를 확보할 수 있는 비상수원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1일 30만㎥ 규모의 신탄진 정수장을 ’98년부터 건설하여 2005년 9월에 통수할 계획으로 일해왔다. 오랜 경력만큼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도 넓다.
그는 누구보다도 깨끗한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신뢰확보를 최우선과제로 일해왔다.
“상수도에서는 깨끗하고 안전한 양질의 수돗물을 단수없이 안정적으로 시민에게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업무를 추진하여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80년대까지만 하여도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시간제로 수돗물이 공급되어, 부동산 소개소에서는 집의 튼튼함보다는 수돗물이 24시간 콸콸 나온다는 설명이 우선으로 될 정도로 당시에는 수질보다는 충분한 수량확보가 가장 큰 관건으로 작용했다고 당시의 사정에 대해 설명한다.

수돗물 불신 하루 속히 없어지는 것이 바램
공급 단계별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를

그러나, 그는 상수도의 3대요소인 수질, 수량, 수압이 모두 향상되어 일상생활에서 풍족하여진 지금은 그 존귀함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가벼이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졌다며, 상수도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들이 가장 아쉬우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수돗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한 수돗물 불신이 하루 속히 없어지는 것이 바램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의 안정적인 공급에 대한 시민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대청호 원수에서부터 가정수도꼭지까지의 공급 단계별로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관리를 해야 신뢰받을 수 있는 수돗물 공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원수관리- 우선 깨끗한 원수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원수관리에서는 수심별 샘플을 채수·분석하여 원수 수질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 수질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24시간 온라인 감시 시스템 구축과 수질개선을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정수단계 관리-정수장은 엄격한 수질관리를 위한 정수장별 목표수질관리제(예:자체탁도 기준 0.1NTU 이하)를 실시하는 등 수돗물의 수질향상을 위한 각종 시설 개선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수질검사 항목 또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각종 환경 호르몬 등에 대한 검사 확대가 필요하다.
셋째, 공급단계 관리-정수장에서 생산된 깨끗한 수돗물이 가정까지 안전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노후관 교체와 생산공정에서부터 가정단위 수도꼭지까지의 급수과정별 모니터링을 통한 수질변화를 면밀히 검토하여 변화요인을 제거아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사용자단계 관리-시민들이 직접음용하고 사용하는 수도꼭지에 대한 수질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수도행정의 중점목표를 시민들 중심의 수도꼭지 수질관리체계로 전환하여 수돗물의 수질에 대한 안전성을 시민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현장중심의 행정이 필요하다. 가정 계량기까지 깨끗하게 공급된 물이 옥내배관의 노후나 저수조의 청소불량으로 녹물출수 등이 발생하면 수돗물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4가지 사항을 김 前본부장은 상수원에서부터 가정수도꼭지까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질관리 방안으로 보고 있다.

신뢰받는 수돗물 위해 분야별 전문가로 무장
물산업 경쟁력 확보위한 공사화 필요도 전망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주변에 나무를 심고 내부 인테리어를 꾸며야 하듯이 시민에게 신뢰받는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물공급 책임자에부터 정수장의 정문을 지키는 청경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로 무장되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GNP수준에 걸맞지 않게 수돗물을 불신하는 이유도 그동안 상수도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 점과 전문가를 육성하지 않은 결과로 보고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03년부터 1일 5문항씩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활용한 상수도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년간 2,500문항정도를 실시하고 매년 평가를 통하여 우수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오는 ’06년까지 ‘상하수도 서비스 표준(ISO/TC224)’을 도입하려고 함에 따른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공사화가 필요하다고 전망한다.
벌써 외국 기업중 Veolia사는 일부 지방의 하수처리시설에 대한 위탁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김홍선 前본부장은 이러한 외국 기업의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양성과 요금의 현실화로 노후 시설의 투자와 시설의 현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전시의 상수원인 대청호는 수량과 수질이 풍족하고 깨끗한 편이지만 다목적댐의 특성상 매년 조류가 발생하고 있어 정수처리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고 밝힌다.
호소물을 강제로 순환시킴으로써 Turn-over를 방지하고, 무산소층을 해소함으로써 조류발생을 억제 또는 저감하기 위해서 추진하였던 수중폭기시설의 설치가 보람있었던 일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으며, ’03년부터 상수도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시다가 퇴직하신 원로 상수도인들을 초청해서 그 분들이 현직에 계시면서 축적된 노하우와 이제 시민의 입장으로 계시면서 상수도를 바라볼 때 개선하여 줬으면 하는 사항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한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임시절 선배들의 격려와 위로에 자신감
시민과 함께 하는 상수도행정이 가장 중요

“제가 9급으로 첫발을 디딜 때 국장급이신 분들도 오셨고, 퇴직한 지 30년만에 오신 분 등 이분야의 원로 전문가분들께서 오셔서 저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많이 해 주시더군요. 저는 그럴 때 수도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김 前본부장은 항상 “수도는 단수 없는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장 큰 경영방침”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상수도 3대 요소의 충족과 선진화된 급수서비스 실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수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이 발생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상수도행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고객 감동을 이끌어내기 행정을 추진한 바 있어 주목받고 있다.
첫째, 신뢰제고를 위한 홍보의 다양화와 둘째, 정수장 시설물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셋째, 3대 청결운동 실시다. 우선 수돗물을 생산 공급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또한 과학적인 수질관리가 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의 신뢰확보를 위해서는 첫째는 상수도 시설환경의 청결이고, 둘째는 수돗물의 청결, 셋째는 물을 만드는 종사자 마음의 청결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홍선 전 본부장의 지론이다.
38년간 대전시 상수도 역사 절반의 변천과정 지켜본 장본인인 김홍선 본부장이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가 지금 명퇴를 결정한 일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8세의 젊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향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 신중하게 고민해볼 계획이라고 밝히는 그에게서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또다른 모습에 새삼 기대가 모아진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시설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정호(30)씨는 부친인 김홍선 前 대전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일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왔고 그 업무를 제가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근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근무하게 된 동기다.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전공했으며 올해 10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아들로서 다시 밟아간다는 것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고 밝힌다. 그래서 업무에 있어서는 하루라도 없으면 살 수 없는 소중한 물을 다루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보람을 느껴가고 있다.

김홍선-1947년생. 대전공대 토목공학과(공학과), 충북대학교 산업대 건설공학과(공학석사)를 나왔다. 대전시 수도사업본부 급수부장, 기술부장을 거쳐 수자원공사 수도공무원 연수원 교수, 대전산업대 및 대전한밭대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대전시 지방공사설계심의위원, 건교부 대형공사 헌기 심의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대전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인터뷰/김정호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시설부

‘아버지의 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

소중한 물 다루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보람 느껴가
실무에 능통한 기술직공무원 역할 좀 더 부각돼야

아버지처럼 평생 노력하는 자세 견지할 것
직원 모두 책임감의 업무수행이 가장 중요

김홍선 前 본부장은 38년간 한국상수도발전의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아들인 김정호씨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항상 맑은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며, 나름대로 향후 계획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 아버지에 이어 상수도역사에 큰 획을 그을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상사들에게 바라는 점과 업무에 대한 개선점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업무를 배워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 스스로를 가다듬은 후 개선점을 찾아 해결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다.
김정호 씨는 향후 상수도사업본부의 발전방안에 대해 “시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직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또한 실무에 능통한 기술직공무원의 역할이 좀 더 부각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그의 부친인 김홍선 前 본부장의 대를 이어 상수도발전의 차세대주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리모두의 관심과 기대는 크다.
취재 / 이준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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