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시닷컴> 오늘은 여러 장

글. 박미산 시인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21-05-11 11: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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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석종 사진작가

 

오늘 여러 장

- 김지녀

뭐가 다른 건지 모를 그림이 여러 장이다
두부가 하나 없는 건가
두부 하나만큼의 빈 자리는 여백으로 훌륭한데
빛이 들어올 구멍으로 딱인데
나는 거기에 재빨리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다시 세어 본 두부는 그대로다
두부처럼 하얗고 연하게 늙어가는 얼굴이고 싶었는데
숟가락이 푹 파 놓은 곳에 두붓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고 싶었는데

삶이 전주곡으로 지나간다*
토막 난 두부가
가지런하다

*릴케 시의 한 구절.

솔방울의 그림도 자세히 보면 다르듯이 삶의 그림도 참으로 다양하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을 가진 것이 인생이다.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숟가락이 푹 파 놓은 곳에 두붓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견디질 못한다.
바람 불면 바람 따라,
눈과 비가 오면 그 현상을 따라,
꽃이 피면 꽃을 따라,
단풍이 들면 단풍 따라,
순리대로 가면 될 것을 우리는 기다리질 못하고 급하게 가다가
엉뚱한 인생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림에서 ‘여백의 미’라는 것이 있듯이
인생에서도 쉼표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매일 매일 뭐가 다른 건지 모르지만,
오늘도 여러 장의 그림 같은 삶이 펼쳐질 것이다.

다양한 삶을 그리면서 모판에 나란히 누워있는 두부처럼
하얗고 연하게 늙어가는 얼굴이 되고 싶다.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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