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패스트 패션 산업의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인해 사용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의류가 수천, 수만 톤에 달하고 있다. 섬유산업이 배출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 세계적으로 13%를 차지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의 10%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도 매년 수백만 톤의 폐의류가 버려지고 있으나, 정부 통계에 잡히는 양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내 71개 상장 의류 기업이 배출한 폐의류는 214만여 톤이었지만, 정부 통계에 잡힌 것은 단 1708톤에 불과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전 세계 의류 30% 판매되지 않고 소각
| ▲제공=다시입다연구소 |
유엔 지속 가능한 패션 연합(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은 2019년 패션 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항공·해운 산업의 배출량(8%)을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전 세계 폐수 배출량의 20%,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35%가 패션 산업에서 비롯된다는 통계도 있다.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주요 원인(35%)도 의류 세탁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세 섬유로 확인되고 있다.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는 “의류 폐기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의류 폐기물의 80%가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있으며, 새 옷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1% 미만에 불과하다. 특히, 폴리에스터·나일론 등 합성섬유 사용이 증가하며 플라스틱 기반 원료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이 재고 폐기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순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의류 재고 처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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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다시입다연구소 |
호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의 30%가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패션 기업들도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소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7개 패션 기업 중 4곳이 공식적으로 재고 소각을 인정했으며, 응답을 거부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이 소각을 진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 보호와 세금 절감, 창고 관리 비용 절약 등의 이유로 재고를 폐기하는 실정이다.
의류 재고 폐기 문제 해결을 위한 각국의 노력
의류 재고 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의류 재고 폐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들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스페인, 스코틀랜드가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는 2020년 「순환경제를 위한 낭비 방지법」을 통과시켜 의류 재고 폐기를 금지하고, 기부 또는 재사용, 재유통, 재활용을 의무화했다. 2023년 12월 31일부터 섬유, 의류, 신발 등의 폐기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개인은 최대 3,000유로, 법인은 15,000유로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또한, 프랑스는 생산자책임제도(EPR)를 최초로 도입하여 기업이 폐기물 관리를 직접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스페인은 2022년 10월 「순환경제를 위한 폐기물 및 오염 토양 법률」을 제정해 비판매 섬유 제품의 폐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재고는 기부 및 재사용을 우선하며, 불가능할 경우 재활용하도록 규정했다. 2025년부터 별도의 섬유 수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주요 패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섬유 폐기물 관리 협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2024년 8월 8일 「순환경제법」 제9조를 통해 미판매 소비재 폐기를 금지하는 법률을 추가했다. 2018년 버버리의 대량 의류 소각 사건 이후 시민단체 중심으로 의류 재고 폐기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이에 따라 정부가 입법을 추진하게 되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7월 18일 ‘에코 디자인 규정’을 공식 발효하고, 2026년부터 의류 및 신발 재고 상품의 폐기를 금지할 예정이다. 또한, 디지털 제품 여권(DPP) 제도를 도입해 제품의 원료, 수리 방법, 재활용 가능 여부를 QR 코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보공개 의무 통해 폐기물 감축해야
또한 의류 재고 폐기를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정보 공개 의무를 부과하거나 기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폐기를 줄이는 국가들 유형도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벨기에가 이에 해당한다. 독일은 2020년 개정된 「순환경제 촉진 및 폐기물 관리 법률」에서 기업이 재고 폐기물을 줄이고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벨기에는 2019년 부가가치세법을 개정해 기업이 의류 재고를 기부할 경우 부가가치세(21%)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기업이 폐기보다는 기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 ▲제공=다시입다연구소 |
그 외의 유형은 관련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거나, 민간 협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들이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은 2024년 3월 의류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현재 심의 중이다. 일본은 의류 산업을 특정한 순환경제 법률은 없지만, 「자원 유효 이용 촉진법」을 통해 전반적인 순환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24년 6월 ‘섬유·의류 산업 친환경 정보 공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기업이 폐기량과 관리 현황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패션업계, 폐기물 신고제도 몰라…“순환경제 구축 필요”
패션업계가 폐기물 신고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은 법규를 준수하고 있지만, 전체 패션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상당수가 신고 의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 약 44만 명이 종사하는 주요 산업이다. 그러나 최근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폐기물 최소화와 순환경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과 시스템이 국내에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순환경제를 위해서는 폐기물의 수거 및 선별 기술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국내에는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대기업조차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중소기업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업계는 정부와 관련 기관에 연구개발(R&D) 지원 및 시스템 구축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국패션협회 박영수 상무이사는 “순환경제를 위해서는 원단, 부자재 등 복잡한 요소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라며, “단순히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제도적, 기술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류폐기물 규제...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유럽연합(EU)의 의류 폐기물 금지 정책이 발효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부족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2030년부터 중소기업의 의류 폐기를 금지하는 법안이 논의됐다. 유럽 기준으로 중소기업은 연매출 150억 원, 직원 수 50명 미만의 기업을 의미하며, 국내 패션업계의 99%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은 “의류 폐기 금지 정책 자체는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대안 없이 법안만 도입되면 오히려 산업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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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모습 |
현재 국내 패션기업들은 과잉 생산된 재고를 소각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은 재고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하며, 몰래 소각하는 것이 법적 제재를 받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 된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소각을 금지하기 전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활용과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패션업계에서는 애초에 과잉 생산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정확한 수요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이 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편, 환경부는 2026년부터 의류 재활용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김수현 사무관은 “업사이클링, 열분해 등 다양한 기술을 가진 기업과 패션업계를 연결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재고 관리와 폐기물 감축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정책 실행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보다 촘촘한 법안 설계와 세부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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