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시민이 늘고 있지만, 실제 기후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반발이 발생한다. 시민들은 원칙적으로 기후 대응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오염 차량 운행 제한과 저공해구역 통행료, 항공권에 부과하는 비행세 등 구체적인 조치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최근 연구는 이러한 차이가 정책의 환경적 효과보다는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혜택, 그리고 정책으로 누가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보는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UAB) 정치학 및 행정학과의 마크 귄조안 강사는 폼페우파브라대학교(UPF)의 토니 로돈, 바르셀로나대학교(UB)의 조엘 아르디아카 연구원과 함께 기후정책에 대한 시민 수용성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서유럽 정치 저널(West European Politics)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스페인 인구를 대표하는 표본을 대상으로 두 가지 설문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10가지 기후정책을 제시한 뒤, 각 정책의 비용이나 혜택에 관한 정보를 무작위로 제공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가상의 도시에 도입되는 기후정책 패키지를 보여주고 정책 내용과 비용, 예상되는 환경·사회적 혜택을 다르게 제시했다. 특히 해당 정책이 부유층과 저소득층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달리 설명해 시민들의 반응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정책의 경제적 비용을 강조할 경우 시민들의 지지는 뚜렷하게 감소했다. 반면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강조했을 때 지지도가 높아지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사람들이 같은 규모의 이익보다 손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 회피’ 성향과 관련된 결과로 해석했다. 기후정책으로 장기적인 환경 개선 효과가 발생하더라도 당장 세금이나 교통비, 에너지 비용이 늘어난다는 정보가 제시되면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정책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비용과 혜택의 재분배 효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기후정책이 소득이 낮거나 자원이 부족한 시민들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할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해당 정책을 훨씬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기후정책이 부유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시민들의 정책 선호에 상대적으로 작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기후정책이 사회적으로 공정하다고 인식될 때 시민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탄소세나 교통 규제처럼 시민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정책이라도 저소득층 환급과 대중교통 지원, 에너지 비용 보조 등 보완 대책이 함께 마련되면 반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기후정책을 설계할 때 환경적 감축 효과뿐 아니라 사회계층별 부담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일한 비용을 부과하더라도 소득이 낮은 계층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정책의 혜택이 장기적이고 사회 전체에 분산되는 반면 비용은 특정 집단에 즉각적으로 집중되는 경우에도 정책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어떤 집단이 지원을 받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정책에 대한 태도에서는 정치적 이념에 따른 차이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진보 성향의 시민들은 기후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특히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는 재분배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전반적으로 기후정책에 대한 지지가 낮았다.
연구진은 특히 극우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기후정책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정책이 환경과 과학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정체성과 이념 갈등의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 대응을 둘러싼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 경우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확대될 수 있다. 극우 정치세력이 생활비 상승과 정부 규제, 농업·산업계 부담 등을 강조하며 기후정책에 대한 반대를 조직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은 기후정책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환경적 필요성만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용을 숨기기보다는 시민이 부담할 금액과 정책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일 구체적인 대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크 귄조안 강사는 이번 연구가 기후행동에 대한 추상적인 지지를 실제 정책에 대한 지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결국 기후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강력한 감축 목표를 제시하느냐뿐 아니라 그 과정의 공정성을 시민들이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다. 환경적 야심과 사회적 형평성, 비용에 대한 투명한 소통을 결합하는 것이 기후정책에 대한 안정적인 대중 지지를 확보하는 핵심 조건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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