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스위스 빙하가 지난겨울 쌓아둔 눈과 얼음에 해당하는 질량을 6월 말 이미 모두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빙하의 연간 질량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이른바 빙하 손실의 날이 관측 사상 두 번째로 빨리 찾아오면서 알프스 빙하의 장기적인 쇠퇴가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위스 빙하 모니터링 네트워크(GLAMOS)에 따르면 2026년 스위스의 빙하 손실의 날은 6월 29일로 추산됐다. 스위스에서 이보다 이른 시기에 겨울철 축적분이 소진된 것은 빙하 전체 부피가 약 6% 감소했던 2022년뿐이다.
빙하 손실의 날은 겨울 동안 쌓인 눈과 얼음의 질량과 봄·여름에 녹아 사라진 질량이 같아지는 시점을 뜻한다. 이 날짜 이후 추가로 녹는 부분은 이전에 형성된 빙하 얼음이어서 빙하 전체의 연간 질량 감소로 이어진다. 지구가 한 해 동안 재생할 수 있는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한 날을 표시하는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이날 빙하 표면의 눈이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도가 높은 곳에는 눈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스위스 전체 빙하를 평균하면 겨울철에 얻은 질량보다 녹아 사라진 양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올해 빙하 손실의 날이 앞당겨진 원인으로는 적은 겨울 적설량과 초여름 폭염이 꼽힌다. 2025∼2026년 겨울 중부 유럽 고산 지역의 적설량은 최근 30년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 중 하나였으며, 스위스 빙하에 쌓인 눈도 5월 초 기준 평년보다 약 25% 적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6월 유럽을 덮친 폭염이 겹치면서 융해 속도가 빨라졌다.
빙하 위의 눈은 햇빛을 반사해 얼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눈이 일찍 사라지면 상대적으로 어두운 빙하 얼음이 드러나 태양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한다. 이 같은 알베도 저하는 얼음이 녹는 속도를 더욱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빙하 손실의 날이 이르다고 해서 그해 최종 손실량이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름철 기온과 강수, 늦여름 강설 등에 따라 융해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빙하가 강한 일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대규모 질량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진다. 빙하 손실의 날을 처음 학술적으로 제시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연구진도 이 지표가 연간 손실량을 확정적으로 예측하는 수단이라기보다 남은 여름 동안의 손실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빙하 감소의 영향은 산악 지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알프스 빙하는 겨울철 강수를 얼음과 눈으로 저장했다가 봄과 여름에 방출해 하천 유량을 조절한다. 당장은 융해량이 늘어나 가뭄기에 하천 유량을 보충할 수 있지만, 빙하의 크기가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늦여름에 공급되는 물도 감소한다. 농업용수와 수력발전, 생태계에 미치는 부담이 장기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관광과 산악 안전도 영향을 받고 있다. 빙하가 얇아지고 균열이 확대되면서 기존 등반로를 이용하기 어려워지고, 낙석과 사면 붕괴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알프스의 일부 스키장은 여름 스키 운영기간을 줄이거나 인공눈과 빙하 덮개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빙하 감소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제학술지 ‘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된 최근 연구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7℃ 높아지는 경로가 이어질 경우 금세기 말 알프스에 남는 빙하가 현재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규모가 작은 빙하가 많은 알프스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빙하가 사라지는 속도가 정점에 이를 가능성도 제기됐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감축으로 추가적인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산악 지역의 물 관리와 관광산업, 재해 대응 체계를 빙하 감소 이후의 환경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이례적으로 이른 빙하 손실의 날은 알프스 지역이 일시적인 폭염을 넘어 장기적인 자연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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